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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리뷰 - 테드 창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우리가 해야 할 일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거대한 침묵

옴팔로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창작 노트

감사의 말

욺긴이의 말

'당신 인생의 이야기' 로 SF소설계의 초신성이자 대안으로 떠올랐던 테드 창의 두 번째 단편집.

테드 창의 숨은 의외로 상당히 재미가 없다. 하드한 SF소설의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sf소설의 레귤러한 팬이라고 자부하는 편이었는데 테드 창이 습득한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나열하는 듯한 작품이 꽤 많아서, 스토리텔링은 둘째치고 소재와 구성 모두 잘 읽히지 않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작이었던 '당신 인생의 이야기(2016)' 단편집은 내로라하는 sf소설계의 모든 상을 휩쓴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두 번째 단편집 숨(exhalation)은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작가가 이런 글을 쓴 의도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듯 말듯한 작품들만 엮어져 있어서, 나에게 테드 창은 이제 '원 히트 원더' 라는 말이 딱 어울릴법한 SF작가가 되어버렸다.

독자가 글을 읽음으로써 작품 안에서 흘러가는 다음 사건을 예측하고 기대하게 만드는게 소설의 기본적인 형태라고 나는 생각한다. 테드 창의 숨은 그런 구조와 기대감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는 작품들의 나열이며, 작가 스스로의 지식을 뽐내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단편집 되시겠다. 전작이 워낙 임팩트가 커서 그런지 나 스스로 테드 창에게 거는 기대감이 어마무시하게 컸던 모양이다. 심지어 소설을 읽다가 너무 허접하고 작가의 지식과잉이 흘러 넘치는 단편(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도 존재해서 아예 끝까지 읽기를 포기한 작품도 있는 유일무이한 단편집이다. 아마 내가 살면서 단편소설을 읽다 접어버린 책은 이 책이 처음일듯.

테드 창의 숨을 읽는 것 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단편집을 두 번 세 번 읽는 걸 추천한다. 마치 뮤지션의 두 번째 음반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리듯, 이 책 역시 심각할 정도로 재미가 없다. 이전작을 쓴 작가와 동일인물이 쓴게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책.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를 보듯 웜홀과 타임머신 이야기를 무슬림 세계관으로 풀어낸 소소한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결고리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 에 대해 재미있게 탐미한 소설이다. 테드 창의 숨에서 그래도 가장 볼만한 소설을 꼽으라면 바로 이 작품을 꼽겠다.

저는 그 자리에서 잠시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고리 왼쪽에서 팔 하나가 쑥 나왔습니다. 그것을 지탱할 몸통도 없는데 말입니다. 팔을 감싼 소매는 바샤라트가 입은 긴 옷의 소매와 똑같았습니다. 팔은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다시 고리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습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15p

세상에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 네 가지 있다. 입 밖에 낸 말, 공중에 쏜 화살, 지나간 인생. 그리고 놓쳐버린 기회.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49p

이 단편집의 타이틀이 된 소설. 테드 창이 영감을 받았다는 필립 k. 딕의 단편, '전기 개미' 와 로저 펜로즈의 '황제의 새로운 마음' 의 엔트로피에 대해 서술한 소설. 안드로이드인 주인공 기계가 공기를 이용한 엔트로피의 개념을 혼잣말하듯 나열한 작품이다. sf작가지만 과학자의 면모가 더 크게 보이는 테드 창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세운 건물, 우리가 일군 미술과 음악과 시, 우리가 살아온 삶들은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 어느것도 필연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우주는 그저 나직한 쉿 소리를 흘리며 평형 상태에 빠져들 수도 있었다. 그것이 이토록 충만한 생명을 낳았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당신의 우주가 당신이라는 생명을 일으킨 것이 기적인 것처럼.

숨 86p

우리가 해야 할 일

버튼을 누르기 1초 전에 LED가 반짝이는 예측기 하나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야기한 소설.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설령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의미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이며, 이 거짓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명의 존속은 이제 자기기만에 달려 있다. 어쩌면 줄곧 그래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야 할 일 94p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온라인에서 살아있는 애완동물(디지언트)을 만드는 회사의 이야기다. 오프라인에 전송을 해, 실제 동물처럼 눈 앞에서 만지고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과연 존중받고 그들의 의사를 현실에도 반영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상당히 긴 호흡으로 써내려간 작품이다. 현실 인간의 아바타가 온라인 상의 동물에게 '주인' 임을 인식하게 하고 밖으로 나온 온라인 동물이 현실 세계에 있는 인간들을 못알아보는 대목 같은게 소소하게 재미있었지만 충분히 퇴폐적이고 하드하게 갈 수 있는 지점에서 보다 안전하고 과격하게 나가지 않는 스토리를 보고, 테드 창은 상당히 점잖은 작가구나 싶었다.

애나가 묻는다. "잭스, 너 뭐 하는 거야?"

잭스가 입에서 피리를 꺼내고 말한다. "마르코 거 빨아주고 있어."

"뭐? 어디서 그런 걸 봤어?"

"어제 텔레비전에서."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150p

저희가 디지언트들에게 제공하는 아바타는 인간형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 존재와의 성경험을 복사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저희는 매력적이고, 다정하고, 진정으로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비인간 파트너를 제공하려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210p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인간 보모에게 자신의 자녀가 학대당하는 걸 보고 로봇 보모를 만든 한 과학자의 이야기.

여성은 감정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에 부모 역할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당시의 사회 통념과 맥을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253p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기억을 검색하는 툴과 인간의 기억은 오류 투성이라는 걸 보여주는 소설. 너무 젠체하는 스토리라서 읽다 포기해 버렸고 이 단편집에서 이 소설만 뜯어 버려버리고 싶다. 심각할 정도로 읽히지 않고 재미가 없다.

거대한 침묵

멸종위기에 놓인 앵무새 이야기.

옴팔로스

일종의 기도처럼 작성된 소설.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게 된 원인과 인간이 받들고 있는 신,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과 지구가 혹시 외계 행성에 지구와 비슷한 모델을 위한 일종의 시험판(데모 버젼)이 아닐까 하는 가설에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꽤 그럴 듯 하지만 언제나 나도 생각해 왔던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 모두가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라면? 인간과 지구는 그저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산물이라면?' 이라는 질문에 '나의 선택' 이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첫 번째 가설은 인간이 별도로 시행된 창조의 결과물이며, 주된 창조를 위한 연습으로 시행된 실험 내지는 시험이었다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 가설은 인간 창조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며, 우리 태양계가 에리다누스자리 58과 닮아 있는 탓에 야기된 일종의 '공명' 연상이라는 주장입니다.

옴팔로스 379p

"나를 가르치신 스승들은 신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답을 찾는 걸 원한다고 했씁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요? 만약 신이 우리에 대해 아무런 의도도 갖고 있지 않았다면요?"

옴팔로스 382p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양자역학으로 평행세계를 이야기한 작품. '프리즘'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이쪽과 저쪽, 총 여섯 개의 평행세계에서 각기 다른 시간대의 자신과 연락을 취하고 뉴스를 주고받고 사건 사고를 점치는 이야기이다. 마치 필립 k 딕의 스캐너 다클리를 보는 듯한 스토리와 음울함을 지니고 있어서, 그래도 꽤나 읽을만 했다. 현실에서 불행한 자신과 다른 세계에서 행복한 자신이 가져다주는 묘한 이질감과 질투를 통해, 인간군상의 여러 면모를 끊임없이 보여주는 소설이다.

"만약 당신이 이곳과는 다르게 행동한 평행세계들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원인은 당신이 아니에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491p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몇 번을 읽어도 찬사밖에 나오지 않는 마스터 피스라면 숨은 그런저런 소설들의 집합체 정도다. 테드 창은 분명 훌륭한 작가이긴 하지만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너무 강렬했다.

 

 

테드 창 숨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