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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영화 엑시트 후기 쿠키영상 없음

 

 

 

지진, 쓰나미, 그런 것만이 재난이 아니라 우리 지금 상황이 재난 그 자체라고.

동아리를 하려면 제대로 된 거, 영양가 있는 걸 했어야지. 산악부가 뭐야 산악부가... 너 심마니 할거야?

난... 아직 멀었어...!

왜 이 동네는 옥상문을 다 잠그는거야, 왜!!!

 


 

조정석의, 조정석에 의한, 조정석을 위한 영화.

대학교 산악 동아리 에이스 출신의 취업 준비생 '용남(조정석)'. 온 가족이 참석한 '어머니(고두심 / 현옥 역)'의 칠순잔치에서 연회장 부점장으로 취업한 동아리 후배 '의주(윤아)' 를 만난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폭발음이 들리며 도시 전체가 서서히 유독가스에 잠식되어간다. 불현듯 용남이 자신이 해왔던 동아리 활동을 활용해, 가족 모두를 안전지대로 긴급히 대피시킨다는 이야기.

결말은 뻔한 영화지만 솔직히 이야기해서 영화 엑시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 같은 영화다. 세상 어딘가에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청년 백수인 용남의 사회적 위치와 빌딩 아래, 어디에도 갈 길이 보이지 않는 공간의 중첩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그것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목적지가 바로 눈 앞에 있는데 아래는 깜깜 절벽. 실수로라도 떨어지면 목숨을 잃을 것 같은, 눈 앞이 캄캄해지는 공포. 은근한 메타포로 포장된 영화적 소재는 상업영화 판에서 엑시트가 입봉작이 된 이상근 감독의 센스와 연출이 빛나는 지점이다(각본도 함께 썼다).

영화에서는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젊은 시절에 '하고 싶은 일' 대신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청춘을 낭비하지 말라' 는 듯이 용남의 '누나(김지영 / 정현 역)' 가 그렇게 타박했던 대학 산악부 시절의 심마니 기질을 이용해 용남이 누나를 구하는 씬은 관객으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족 모두를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본인 밖에 없다는 구조도 참 좋았다. 건물 밖으로 몸을 던져, 옥상의 문을 열러 가는 길에 용남은 몇 번이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하며 몸을 멈칫 거린다. '아버지(박인환 / 장수 역)'가 말리러 왔을 때에도 머뭇거리던 몸이 엄마가 달려오는 소리에 행여 마음이 약해질까 다짜고짜 반대쪽 빌딩으로 몸을 던진다. 제대로 된 취업을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항상 있는데 특히 엄마를 떠올리면 마음이 심히 약해지는 아들의 모습을 진짜 은근히 잘 표현했다.

자신들의 목숨 대신 타인들을 모두 구해내고 곧바로 현타가 오는 지점들도 현실감있게 그려내서 진짜 현실성 있는 영웅담을 보는 것 같았달까. 특히 용남 역을 맡은 조정석의 도처에 깔려있는 에드리브 같은 대사, 몸짓(칠순잔치 때 엄마 한 번 업어드리고 싶었는데 못 업는 장면), 표정 등 무엇하나 허투루 표현하는 것 없는 찰진 연기력을 보여준다. 마치 조정석을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건축학 개론(2012)' 의 캐릭터, '납뜩이'가 취업 준비를 하다 빌딩에 갇힌 느낌.

유치하다거나 충분히 신파조로 갈 수 있는 장면들도 다 덜어내어, 스피디한 전개로 관객의 집중력을 높이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탈출 액션과 막히는 상황마다 최적의 탈출구를 찾아내는 용남과 의주의 기지가, 처음 타보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처럼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재미를 주는 아주 훌륭한 재난 어드벤쳐 영화다.

대한민국 청년들의 출구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기껏 입사한 곳이 사수가 연애하자고 졸라대는 회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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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시트의 쿠키영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