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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영화 도어락 후기





우리나라에서 착하게 살면 뭐 되는지 알아? 호구 돼. 개호구.





처음에 신고를 했을 때 저 의심하지 않았어요? 자작극이라고?





경민씨 주변엔 남자가 너무 많아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영화 도어락은 남성혐오로 시작된다. 버스에서 '경민(공효진)' 이 듣는 남자들의 대화중에 이런게 나온다. '여자랑 술 먹고 모텔까지 갔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너 등신이냐?' 이런 텍스트를 지나가듯 슬몃 보여주는 것 하나로 남성혐오가 지금의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남자들간의 대화는 80% 정도가 저런거다.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남자가 다 저모양인 건 아니지만 입이 더러운 친구들이 꽤 있다. 


오피스텔에 살면서 수협의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경민. 어느날 부터 현관의 도어락 덮개가 열려있거나 밤이면 누군가가 도어락을 풀고 들어오려는 소리가 들린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냥 지나가는데 아침에 깨어나면 이유없이 머리가 무겁고 꼭 방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던 어느날 경민의 집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는 이야기.


한국에서 여성으로, 그리고 계약직 근로자로 살아간다는게 어떤건지 잘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초반부터 시작되는 남성혐오와 자신의 몸은 결국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이상한 법치국가의 논리. 사방에서 도사리고 있는 여성에 대한 범죄를 극명하게 그렸다. 


특히 사건이 터지기 전, '사건' 이 없으니 이런건 신고 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경찰의 말이 참 그랬다.



분명 어젯밤에 누군가가 자신의 오피스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생각이었고 문 앞에 담배꽁초도 놓여있었지만 경찰들은 누가 술에 취해서 집을 잘못찾았을 거라며 그냥 가버린다. 물증과 심증도 있지만 목격자나 증인도 없어서 그저 미래의 피해자를 방치하게 되는 케이스. 오피스텔 복도 특성상 모조품인 cctv만 있을 뿐,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처지에 스스로 범인을 물색해야 한다는 현재의 한국을 잘 그려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경민의 주변 남자들은 거의 모두 '용의자' 로 보이는 신박함을 보여주는데 저게 현실이다.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층에 내리는 남자, 늦은 밤 길거리를 혼자 걸을 때 유독 자신을 따라오는 것 같은 남자, 같은 회사 직장 상사지만 자신의 집 호수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 한 번에 알고 찾아온 남자(이천희 / 김성호 역), 자신이 상품을 팔려고 고객에게 의도적으로 흘린 눈웃음 한 번에 '나쁜년' 이라며 스토커 처럼 따라붙는 남자(조복래 / 김기정 역), 오피스텔의 관리인이라 그나마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남자(이가섭 / 한동훈 역) 등. 사방에 깔려있는 남자들이 죄다 이상해 보이고 잠재적 성폭행 용의자가 아닐까 늘 노심초사한다.


영화에 그려진 '남성' 들의 잣대는 현실에서도 꽤 그렇다. 내가 일단 남성이다 보니 완력으로 마음만 먹으면 여성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의 프레임을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대로 쓸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나 오늘 여자 성폭행 할거야' 라고 마음먹고 길거리로 나서는 병신은 없다. 술을 먹다가, 말싸움 하다가, 여자친구에게, 평소 나 혼자 마음에 두던 이성에게, 불현듯 저지를 수 있는게 성폭행이고 성범죄다. 이런걸 막으려 '펜스룰' 같은 것도 만들곤 했지만 효력을 떠나서 남녀 사이만 더 이상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어찌됐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제정신 박힌 남자는 여자를 힘으로 어떻게 해 볼까 라는 생각을 평생 살면서 거의 하지 않겠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남자니까. 나는 여자를 때리느니 차라리 호구 소리 듣는게 낫다는 주의라서 어느정도 서로 상호 호감이 있다는 동의(?) 하에 관계를 발전시키는 스타일이다. 이것 역시 관계 후에 강간범으로 몰릴 수 있으니 자나깨나 남자는 여자 조심, 여자는 남자를 조심해야 하는 아주 피로한 세상이다.


어쨌든 사건이 터진 후, '형사(김성오 / 이형사 역)' 의 피해자에 대한 태도 역시 좀 씁쓸하다. 욕은 기본이요 피해자에게 윽박지르며 '가해자' 운운하는 모습들은 여러 형태로 변질되어버린 남녀관계에서 파생된 돌연변이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여성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를 하는 남성에게 '에이 설마' 라는 남혐 프레임이 씌워지기도 하고 '너 한 번 엿 먹어봐라' 라며 여자가 남성에게 당한 피해를 호소했는데 알고보니 무고죄인 경우도 허다하니까.






특히 본작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뒤, 회사에서 가차없이 잘려나가는 비정규직 여성은 참 씁쓸했다. 분명 엊그제만 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길 꿈꿨었는데 회사에서는 무기계약직을 제시하고 일이 터진 뒤엔 계약 파기라는 단순하고 짧은 말 한마디면 회사 쪽에서는 모든 사건이 해결되니까.


영화 도어락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세상을 아주 잘 그려냈다. 딱 중반까지만. 범인이 지목되고 반전에 반전을 꾀한 플롯은 앞서 등장했던 '대한민국 비정규직 여성 생존기' 가 좀 많이 가려질 정도로 안일하고 대책없다. 최종 가해자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일단 사악하고 매니악하고 변태적으로만 그려지면 만고땡인건지 좀 쉽고 지저분하게 가려는 경향이 보인다. 그는 이제껏 한국에 등장한 여러 스릴러들 중에서 본적이 거의 없는 상황으로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데 좋게 보면 새로운 구성이고 나쁘게 보면 너무 가학적이다. 가해자가 평소에 여성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론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새로운 장난감이 생겼다고 수집품을 쉬이 버리는 캐릭터는 영화 초반에 보여주는 경민과 가해자의, 야밤에 (경민 모르게)이뤄지는 컨셉들과는 좀 갭이 있다. '이게 다 저 새끼가 싸이코패스라서 그렇습니다' 라고 말한다면야 뭐 쉬운 변명이긴 하겠지만.


또한 이런류의 스릴러 영화들이 종종 함정에 빠지는 지점이 바로 주인공이 스스로 범인을 단죄하려는데에 있다. 경찰이나 법이 피해자를 구제해 주지 못할거라는 소스를 여기저기 뿌린 뒤에 타인들은 역시 믿을게 못된다는 명제를 스스로 만들며 믿어버린다. 영화 도어락에서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경찰이 손을 내밀긴 하지만 결국 범인을 처벌하는 건 피해자 자신이다. 여기까지는 뭐 좋다 이거야. 마치 스릴러를 넘어 호러에 가까운 마지막 스테이지는 좀 많이 억지스러운게 함정이다. 버려진 폐가를 찍고 최종 보스와 함께 라스트 스테이지로 떠나면서 그저 텍스트로만 가해자의 이미지가 완성된다. 앞서 그가 보여준 모습들, 밤에 경민과 벌였던 놀이들, 가해자가 이미 죽음까지 몰고간 첫 번째 피해자에게 했던 더러운 짓들 만으로는 가해자의 명분이 서질 않는다고 느낀 건지... 최악의 '악' 을 만드는 과정이 좀 어설펐고 최종전에서 경민과 투닥거리며 낑낑대는 모습은 '절대악' 스럽지 않게 흐지부지 끝나버려서 '뭐지?' 하는 의구심을 들게하기 충분하다.




어찌됐든 영화 도어락은 한국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모습을 호러에 가깝게 잘 그린 건 맞고 스릴러의 구조상 가해자를 구현하는 캐릭터 구축에 실패한 영화다(연기를 잘 한다고 캐릭터가 좋은 건 아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도 가정용 cctv를 검색해 봤으니 앞으로 더 많은 (혼자사는)사람들이 자신의 집과 자신을 지키려 가정용 cctv를 설치할 것이다. 그냥 즐기는 영화로 치부하기엔 굉장히 많은 의미들을 담고있는 영화였다. 특히 여성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작금의 현실을 잘 그려내서 더욱 씁쓸한 영화.








+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복도에도 cctv 자체가 없다. 다행히(?) 질 나쁜 성범죄 같은건 아직 벌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서로 알아서 조심하고 있다는 반증 같은 건가? 하지만 집 앞에 둔 택배 분실 사건들은 왕왕 일어나고 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살아가려는 아해들의 머릿속은 당췌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해할 가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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