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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영화 카페 벨에포크 리뷰 쿠키영상 있음

- 하루만 과거로 간다면 언제로 갈래요?

- 선사시대요. 그 때는 아내랑 잤죠.

- 도대체 누구세요?

- 아무도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자네같은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 언제 다시 볼까요?

- 1974년에요.

창작을 다시 하세요. 인생을 마지막까지 사는 겁니다.

습작만 그리다가 진짜 인생을 놓쳐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요.

이제 막 알았는데 벌써 당신이 그리워요.


 

 

뜨거웠던 그 시절의 열정을 위하여.

젊은시절, 신문에 기고하는 삽화로 이름을 조금 알렸던 '빅토르(다니엘 오떼유)'. 지금은 지류 신문이 아닌 웹신문으로 바뀌어버린 탓에 실직한지 오래다. 빅토르의 아내 '마리안느(화니 아르당)'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이름을 날리는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아들, '맥심(미카엘 코헨)' 덕분에 여전히 정력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만끽중이다. 너무 늙어버린 남편 빅토르 대신 그의 오랜 친구인 '프랑소아(드니 포달리데스)'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어떻게든 빅토르와 이혼하려고 준비중인 마리안느. 당장 짐을 싸서 남편을 내쫓는 아내 덕분에 하루아침에 집도 돈도 모두 잃게된 빅토르를 위해 아들과 아들의 친구, '앙투안(기욤 까네)'이 100% 맞춤형 핸드 메이드로 만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준비한다는 이야기.

영화 카페 벨에포크는 온 세상이 재떨이 같았던 1970년대를 그대로 복원해 낸 독특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히피의 정신으로 마리화나와 담배를 빨고 그룹섹스를 즐긴다. 아들이 아버지의 사그러든 열정을 다시 복원시키고자 시간여행 사업을 하는 친구 앙투안에게 '카페 벨에포크'를 재현해달라 부탁했고 빅토르는 마리안느에게 쫓겨나 당장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사전 인터뷰에 응한다. 빅토르가 다시 가고 싶던 시절은 1974년 5월 16일의 리옹. 그 날 카페 벨에포크에서 빅토르는 마리안느를 처음 만났었다. 부부생활이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지 감도 안 오지만 재미삼아 마리안느를 처음 만난 날을 시간여행의 목적지로 빅토르는 선택한다. 그곳에서 늙어버린 빅토르를 맞이하는 건 젊은 시절의 마리안느를 연기하는 배우, '마고(도리아 틸리에)'.

그녀는 시간여행 서비스의 사장직은 맡고있는 앙투안과 극단적인 연애를 하고있는 인물이다. 처음엔 그저 일이 필요해서 앙투안의 제안을 수락하지만 빅토르의 시간여행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몇 번이나 앙투안과 부딪히며 그녀가 맡은 빅토르의 마리안느 역을 위태위태하게 이어나간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는 일단 100% 고객 맞춤형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이 재미있는 영화다. 우리가 가장 멋지고 열정적이었던 그 때 그 시절을 기억하며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모든 것들이 그저 세트장에 돈 받고 일하는 배우들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빅토르는 식어버린 자신의 열정에 다시금 아주 작은 불빛이 일렁이는 경험을 한다. 그건 바로 젊은 마리안느를 연기한 마고 덕분. 마고 역시 앙투안과의 복잡한 관계에 염증을 느꼈던 터라 영화 초-중반엔 그저 '일'로만 마리안느를 연기하지만 이내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빅토르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 열게된다. 결국 앙투안이 마고의 심중을 눈치채, 질투심에 눈이 멀어 프로젝트 자체를 파기해 버리지만 새로운 세트장에서 또다른 거짓말로 빅토르를 속여야 했던 마고의 눈물은 꽤 감동적이기까지 해서 쉽고 단순하게 보고 넘길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찌질한 변태같던 앙투안.

 

어린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친구 아버지인 빅토르에게 진 빚 때문에 맥심의 제안에도 흔쾌히 프로젝트를 성사시켰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요 배우인 마고가 빅토르에게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빅토르만의 카페 벨에포크를 지우고 또 다른 거짓말로 빅토르를 속이는 앙투안은 정말이지 너무 보잘것 없어보였다. 앙투안의 질투심이 없었다면 마고의 눈물을 볼 수 없었겠지만 마고와 빅토르가 맺어진 결말도 은근히 궁금해진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는 우리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과거로 돌아가, 처음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날을 되새기는 시간여행 영화지만 의외로 멍청하고 너절한 현재의 아내말고 과거의 아내역을 맡은 젊은 여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다시금 느끼는 빅토르의 모습을 보면서 꽤나 복잡한 영화라고 느꼈다(대부분 이런류의 영화는 시간여행이 현재의 아내를 다시 사랑해주는 매개체로 작용하지만). 활활 타오르다 나이가 들어 꺼져버린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영화. 어찌됐든 빅토르는 마고 덕분에 숯이 되어버린 마른 나무 같은 자신의 마음을 다시 촉촉하고 활기있게 만들 수 있었고 아들이 추진했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도 정력적으로 참여하는 등 인생 후반의 삶을 예전처럼 낭비하며 살지 않게 된다. 그런 빅토르를 보면서 불륜 상대였던 남편의 친구를 다시 차고 남편에게 돌아온 아내의 모습은 좀 별로였지만.

영화 카페 벨에포크를 보고나면 빅토르의 젊은 시절은 어땠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1970년대의 분위기와 빅토르가 사랑에 빠지는 마고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던 영화. 카페 벨에포크 ost 로 쓰인 baccara 의 yes sir, i can boogie와 alain souchon 의 j' ai dix ans, 그리고 영화 여인의 향기에도 쓰였던 유명한 곡인 por una cebeza의 보컬이 첨가된 버젼도 정말 좋다. 영화에선 '현재가 중요하다' 라는 식의 교훈을 관객에게 주입시키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잊고 살았던 '열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 역시 과거에 존재했던 여러 순간들로 돌아가고픈 생각은 없다. 그 때 느꼈던 그 감정들과 열정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고 싶기만 할 뿐.


+

영화 카페 벨에포크의 쿠키영상은 한 개다. 엔딩 크레딧 올라가기 전에 바로 나오는데 티격태격하며 애증의 관계를 이어가던 앙투안과 마고의 결혼 장면... 인줄 알았으나 다시 또 시간여행 컨셉으로 일을 하는 쿠키영상이다.

++

영화 소재가 소재인 만큼 빅토르와 마리안느역을 맡은 다니엘 오떼유와 화니 아르당의 젊은 시절 모습도 보고가자.

 

어찌됐든 좋은 결말로 끝이 난 영화지만 마리안느의 오래된 남편이 익숙해져서 감사할줄 모르게 된 성격은 정말 너무 싫다.

 

+++

영화에 등장한 100% 맞춤형 시간여행 비용은 2천만원이다. 이틀인가 하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