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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영화 더 플랫폼 리뷰 쿠키영상 없음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지. 꼭대기에 있는자, 바닥에 있는자, 추락하는자.

한 층에 두 명씩, 47층이니까 우리는 94명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거예요.

- 신을 믿어요?

- 이번 달엔 믿어.

- 당신은 살인마야.

- 아니, 난 그저 겁먹은 사람이야.


 

 

 

우리가 맞이한 작금의 팬데믹 시대에 알맞는 영화.

최상위 0층부터 최하위 333층까지. 매 달 한 공간에 두 명씩 위치하는 층이 랜덤으로 바뀐다.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자발적 연대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수직 자기관리센터 '구덩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

영화 더 플랫폼은 이런류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유도 영문도 모른채로 일단 시작한다. 맨 꼭대기층인 0층에서부터 333층에 한 달동안 거주하게 되는, 한 층에 머무르는 두 명의 사람들을 위한 식사가 배급되고 모두 균일하게 식사를 한다면 모두가 한 달을 거뜬히 버틸 수 있는 양을 제공한다. 어제는 333층이었지만 다음달엔 1층에서 깨어날 수도 있는, 무작위의 경우의 수에 사람들은 매달린다.

영화 더 플랫폼의 주인공인 '고렝(이반 마사구애)'은 자신의 학위를 받기위해 6개월 동안 구덩이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최초의 층인 48층에서 깨어난다. 그와 함께 파트너로 한 달동안 지내게 된 사람은 '트리마가시(조리온 에귈레오)' 늙고 작은 이 노파는 어느날 tv를 보는데 돌덩이도 자를 수 있는 사무라이 칼갈이 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 광고를 보면서 분에 못이겨 텔레비젼을 창 밖으로 던져버렸는데 불법체류자가 그 tv에 맞아 죽어, 정신병원에 수감될 건지 이 구덩이에 들어갈 건지 선택하라고 하길래 들어온 인물. 트리마가시가 열이 받았던 포인트는 칼갈이 cf가 끝나고 곧바로 돌도 자를 수 있다는 사무라이 플러스 칼 광고를 본 이후였다. 이 구덩이엔 참여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소지품이나 물건을 하나씩 고를 수 있는데, 드리마가시가 들고 들어온 건 역시 사무라이 플러스라는 이름의 칼.

자신의 구덩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트리마가시는 혹시모를 최하층 신세를 면하기 위해 사무라이 플러스를 자신의 몸처럼 귀하게 지니고 다닌다. 주인공 고렝은 한가롭게 책 한권(돈키호테)을 들고 구덩이에 들어왔다. 하루에 딱 한 번 0층에서 내려오는 식사가 담긴 식탁을 '플랫폼'이라고 명명했기에 영화의 제목이 이렇게 되었다. 고렝은 구덩이의 오랜 경험자인 트리마가시의 충고를 무시하고 3일 정도까지 물만 마시며 쫄쫄 굶다가 결국 순응하여 윗층에서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플랫폼을 타고 위에서 아래로 돌아다니는 여자 '미하루(알렉사드라 마상카이)'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구덩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이를 찾기위해 최상층에서 최하층까지 끊임없이 이동하는 인물. 층에 괴악한 남자 둘이 있을 경우, 당연지사 성적으로 유린당하기 딱 좋은 캐릭터인 미하루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녀에게 달려드는 남자들을 죄다 죽여가면서 살아간다. 트리마가시는 미하루의 아이 따윈 이 구덩이에 없으며, 존재한다고 해도 진작에 굶어죽었을 거라면서 미하루를 정신병자취급한다.

이윽고 한 달이 지나 132층에서 깨어난 고렝과 트리마가시. 주인공보다 훨씬 생존능력이 높고 사무라이 플러스라는 칼도 가지고 있는 트리마가시는 고렝이 깨어나기 전에 이미 그의 사지를 묶어, 최악의 상황에 놓였을 때 고렝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1년 넘게 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인물이 바로 트리마가시다. 달팽이 요리를 할때는 달팽이의 독을 다 빼내야 한다며 며칠동안 고렝에게 물도 먹이지 않고 녹초가 되게 만드는 트리마가시. 그의 굶주림이 극에 달했을 때 고렝의 살을 파먹기 시작하지만 마침 플랫폼에 타고있던 미하루가 나타나 고렝을 도와준다. 그리고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초죽음에 이른 고렝에게 트리마가시의 살을 베어 먹이며 그의 생존을 돕는다. 미하루는 다시 플랫폼을 타고 내려가고 혼자 살아남은 고렝은 또 한 달을 버텨 새로운 파트너인 '이모구리(안토니아 산 후안)'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고렝의 구덩이 면접을 도왔던 접수원이었다.

자신의 애완견인 '람세스 2세'와 함께 구덩이에 들어온 이모구리. 다행히 그들이 깨어난 층은 33층으로, 상당히 깨끗하고 많은 수준의 식사가 플랫폼을 타고 내려오게된다. 강아지와 하루씩 번갈아가며 식사를 하던 이모구리는 구덩이의 생리를 잘 알고 있기에 아래층 사람들에게 2인분의 정량 식사를 접시에 따로 담아놨으니 구덩이에 있는 사람들이 공평하게 음식을 나눠먹으면 모두 다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거라고 독려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듣는 이는 없다. 구덩이와 관련이 있는 이모구리에게 고렝은 자신의 궁금증을 계속 물어보지만 일개 접수원일 뿐인 이모구리.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고 두 사람은 171층에 내려오게 된다. 고렝이 눈을 떴을때 이모구리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 또 혼자가 된 고렝은 벽에다 목을 맨 이모구리의 살을 뜯어먹으며 생존하게되고 다시 또 한 달이 흘러 6층에서 꿈처럼 깨어난 고렝. 그곳에서의 새 파트너는 힘세고 진보적인 생각을 지닌 바하랏. 5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밧줄을 잡아달라며 자신이 맨 상위층으로 가, 운영진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지만 위에서 떨어지는 건 5층 사람들의 똥 뿐이었다.

결국 바하랏과 고렝은 맨 아래층까지 플랫폼을 타고 내려가면서 모든 층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일정량의 음식을 직접 배분하기로 결정한다. 플랫폼이 최하층인 333층까지 닿은 다음엔 초고속으로 다시 수직 상승하는 시스템의 맹점을 노린것. 하지만 두사람의 의지는 51층 이하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적어도 51층에 머무르는 사람들한테까지는 그나마 먹을만한 음식 찌꺼기들이라도 남아있었기 때문. 결국 몸을 많이 다친 두 사람은 최하위층인 333층에 도달하기에 이르는데 그곳엔 미하루의 아이가 진짜로 있었다. 사람들에게 모두 빼앗긴 음식들 덕분에 음식이 깨끗한 채로 플랫폼을 다시 올려버리면 운영진들의 생각이 조금은 바뀔거라는 두 남자의 계획 대신 단 하나의 최고급 음식인 판나코타(푸딩)만은 목숨을 걸면서 지키고 있었는데 굶주리고 있던 미하루의 딸에게 그걸 먹이고 대신 그 아이를 플랫폼에 태워, 최상층으로 보내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게 영화 더 플랫폼의 결말이다.

영화 더 플랫폼은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팬데믹에 빠진 지구인들을 위한 영화같다. 한정된 자원을 모두 공평하게 나누자는 고렝의 말을 듣고 트리마가시는 공산주의자냐며 비아냥대지만 서로 다른 질의 노동을 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의 격차도 꽤나 커져버린 이 시대에, 조금 많이 가진 사람들이 많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만 양보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영화 더 플랫폼에서 식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레벨은 오직 랜덤으로 돌아가는 각 층의 위치 뿐인지라 마치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의 가치관과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의 가치관을 비유하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은 모두 자기책임이지만 그 이전, 유년시절의 모든 걸 결정짓는 것들은 부모가 지닌 부와 거기에서 오는 부모의 결정권, 혹은 가치관이기 때문에.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의 부모를 고를 수는 없다.

결말과 설정은 이런 장르의 영화(특히 큐브)가 대부분 그렇듯이 제대로된 설명도 없고 주인공은 후반에 가면서 이미 죽은 트리마가시와 이모구리를 보는 정신착란 증세에 시달린다. 결말 역시 뭔가 멋진 일들을 보여줄 것 같지만 소녀 하나 플랫폼에 태운채 333층 더 밑의 맨 바닥에서 고렝이 어디론가 걸어가며 끝이난다. 모두 조금씩만 양보하면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을거라는 메시지 하나만 남긴 영화 되시겠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0층이나 1층이 일반적인 최하층이 아니라 맨 위부터 번호를 매겨가는 방식으로, 거꾸로 반전되어있다는 것(0층이 최상위 층이고 333층이 최하위층).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설정은 '플랫폼'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담겨져 있는 식탁이 아무 장치도 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데 그걸보고 누구하나 신기해 하지 않는게 신기했다. 등장인물들이 왜 이런 시설에 갇혀서 몇 달을 보내야하고 구덩이를 정부에서 운영하는지 일개 회사가 운영하는지 등의 설명 역시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0층에서 음식을 조리해서 나르는 사람들은 대사조차 묵음처리 되어 보여진다. 꽤나 불친절한 영화, 더 플랫폼이었지만 코로나 덕분에 개인 이기주의를 펼치면 충분히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요즘 시기에 딱 어울리는 영화였다. 특히 공적마스크 이전부터 마스크 물량이 부족해 모두 아웅다웅하던 것과 자신보다 더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공적마스크 구입을 포기하는 사람들, 남들이 코로나에 걸리던 말던 '현재'가 중요하다며 이태원 클럽에 가서 흥청망청 놀아자빠지던 사람들 등 여러 인간군상들이 더 플랫폼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

영화 더 플랫폼의 쿠키영상은 없다.

++

구덩이에 들어가기 전, 지원자나 수감자(?)들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절차에서 주인공 고렝은 달팽이 요리를 골랐다. 그런 고렝을 먹을 거라며 달팽이에 비유하던 트리마가시의 대사들은 참으로 아이러니.

+++

영화 더 플랫폼에 등장하는 '구덩이' 의 설정은 정말 좋다. 음식을 몰래 숨겨놓으면 살이 타서 몸이 잿덩이가 될 때까지 방의 온도가 올라간다거나 몸이 얼어붙을 때까지 추위가 계속되는 것과 생존을 위해 오직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플랫폼(식탁)에 목숨을 걸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시스템, 한 달이 지나면 랜덤으로 층수가 정해진다는 공평한(?) 시스템 등 꽤나 디스토피아적이고 SF적인 요소로 무장한 영화다. 이 모든 설정들이 오직 메시지 전달에만 사용되었다는게 함정이지만. 조금 더 신경써서 플롯을 완성했다면 정말 완벽한 영화가 됐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우리네 인생사가 다 그렇듯, 확연하고 명징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열린결말의 엔딩도 딱히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