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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영화 톰보이 리뷰

언니보고 미카엘이라고 하더라. 일부러 그런거지?

넌 이름이 뭐야? 난 로레야.

널 상처주려는게 아니야.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줄래? 난 정말 모르겠거든.

널 사랑해 언제나.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읊는 성 정체성.

 

새로운 곳으로 이사온 '로레(조 허란)'는 동네에 살고있는 아이들에게 로레가 아닌 '미카엘'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아직 개학 전의 여름방학이고 누구도 남자아이같은 로레를 여자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남자아이들이 윗옷을 벗고 마음껏 질주하는 축구도 같이 하고싶고 로레에게 처음 접근해준 여자아이, '리사(진 디슨)'와도 애틋한 관계를 맺고싶다. 그저 자신이 하고싶은대로 살고싶은 10살짜리 소녀에 대한 이야기.

영화 톰보이는 시작부터 로레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여동생 '잔(말론 레바나)'과 부모님들은 로레를 여자라 칭하지만 스크린에 보여지는건 남자아이라고 해도 믿을법한 로레의 몸과 보이시한 얼굴 뿐. 딱 그 나이 또래 여자아이의 행동과 말투, 외형을 지닌 여동생 잔과 상당히 대비되는 로레의 마른 몸, 중성의 목소리, 표정등은 가족 말고는 동네 이웃들과 관객들마저 남자아이로 보기 충분하다.

주인공 로레는 열살이지만 응석쟁이인 여동생과 상당히 다른 성격도 지녔다. 본인의 특성인지 아니면 그렇게 자라온 탓인지 몰라도 정말 남자아이같은 태도로 부모를 대한다.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거리가 있어도 혼자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며 '아빠(마티유 데미)'나 '엄마(소피 카타니)'에게 상담을 요구하거나 볼멘소리를 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가 이미 중성적인 자신의 몸에 상당히 익숙해져서, 남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과 태도 따위는 다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한다.

열살짜리 여자아이가 새로 이사간 동네의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처음 접근했을 때, 로레 스스로가 '미카엘' 이라고 이름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모두들 그녀를 남자아이라고 여긴다. 로레에게 같이 놀자고 제안한 리사부터 여자가 아닌 남자로 로레를 대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익숙한 로레는 마치 자기방어기제처럼 남성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뱉는다. 여동생 잔이 했던 대사처럼 이전에 살던 곳에서도 로레를 여자라고 보지 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는듯. 어찌됐든 로레는 '미카엘' 이라는 남자이름 덕분에 또래 친구들과 게임도 하고 축구도 하고 리사에게 키스도 받으면서 조금씩 자라난다.

자신이 타고난 성을 성인이 되고나서 뒤집어 버리게 되는 기질 같은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누나만 위로 셋, 넷이 되는 남자들이 게이나 트랜스젠더로 성정체성이 확 변하는 사례는 손에 꼽을테지만 그런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남자들의 성향이나 말투, 행동이 여성스러운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어린시절부터 몸에 밴 것들이다. 로레의 경우도 벌써 가슴이 봉긋하게 올라온 동갑내기 리사와는 달리 윗옷을 벗어도 누구하나 여자라고 보지 않는 주변의 시선 덕분에 굳이 귀찮은 일을 만들기 싫어서 남자인척 행세하는게 여자라고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로레가 미래의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가 될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여자지만 남자로 살아가는게 '편해서' 로레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다.

영화 톰보이는 오직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성정체성을 겪는 열살의 소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녀의 아빠는 로레가 선택한 길을 묵묵하게 바라보며 어깨를 빌려줄 뿐이고 억척스러운 엄마는 로레가 혼쭐을 내준(싸움도 잘해~) 한 남자아이의 부모가 찾아온 일을 계기로 동네에 살고있는 모든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파란 원피스를 입힌채 사과를 하러 다니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곧 학교가 개학을 하니까. 딸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이렇다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도 어느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결국 로레는 미카엘과 같이 어울렸던 동네 아이들의 악몽같은 놀림거리가 되고난 뒤 파란색 원피스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성큼성큼 어디론가 향한다.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로레를 괴롭히는 동네 남자 아이들과 리사였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그래도 그렇지 첫 키스 상대였던 리사 손으로 확인을 시키다니...). 이 사건은 로레의 가슴속에 반항적인 기질을 더 심어놓는 계기가 된다. 처음엔 그저 동네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어서 남자인척 했던 여자아이지만, 어린시절 사회생활의 전부인 그들과의 관계가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한 순간에 일그러졌음에도 로레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영화 톰보이가 대단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영화는 로레를 여성인지 남성인지 트랜스젠더인지 레즈비언인지 정의하지 않고 그저 로레의 시선과 선택을 따라가기만 할 뿐이다. 세상의 비난과 평가 따위는 모두 나뭇가지에 걸어둔채. 그리고 로레의 여동생인 잔은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로레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후원자인데 마치 세상에게 로레같은 아이가 있다면 잔처럼 행동해 달라는 식으로 표현됐다. 비록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려는 생각에 언니의 거짓말에 동조하는 거지만 지극히 자연스럽고 잔의 길고 긴 속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은채 뻔뻔하고 천연덕스럽게 언니의 거짓말을 동네 아이들이 더 믿게 만든다.

영화 톰보이의 연출을 맡은 셀린 시아마 감독이 2019년에 완성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흥행 덕분에 본작은 2011년에 제작되었지만 지금 국내 극장가에서 상영하고 있다. 성소수자들의 문제를 상당히 객관적으로 그려낼 줄 아는, 실력이 상당한 감독이라는 걸 영화 톰보이를 보고나서 한 번 더 깨달았다.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로렌역의 조 허란이 9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레즈비언이 되었는지 바이섹슈얼인지는 상관없다. 그냥 자신이 살고싶은 대로 살아가면 그만인것을.

 

 

아래는 로레의 여동생 잔역을 맡은 말론 레바나.

마치 역변과 정변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