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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영화 사냥의 시간 리뷰

폼만 그럴싸하다.

디스토피아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감옥에서 출소한 '준석(이제훈)'이 옛 친구들과 함께 불법 도박장을 턴다는 이야기.

영화 사냥의 시간이 우여곡절 끝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117억이라는 제작비를 들여 만든 영화이고 원래는 2월과 3월 즈음에 국내 개봉을 확정지은 작품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져, 극장개봉이 불투명해 졌을 때, 넷플릭스가 120억이라는(제작사 대표 피셜 150억원 안팍) 가격으로 판권을 구매하여 스트리밍 서비스로 절찬 상영중이다. 그 전에 영화 사냥의 시간을 해외에 수출하기로 업무협약을 맺은 '콘텐츠 판다' 로 부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 넷플릭스와 이중거래를 한 영화임이 확인되었지만 돈을 먹였는지 제작사인 리틀빅픽쳐스와 콘텐츠 판다는 원만한 합의 끝에 2020년 4월 23일 전 세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개되었다.

영화의 주요 골자는 이렇다. 예전에 함께 한탕하던 친구들인 준석,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이 뜻을 모아 준석이가 3년 동안 고안해낸 작전으로 불법 도박장에 들어있는 현금뭉치 달러들을 털자는 것. 거기에 낑겨있는 '상수(박정민)'는 해당 도박장에서 일을 하는 인물이다. 감옥에 있던 3년 동안 무슨 수를 썼는지 준석이는 아는 형님과 지인들을 총동원해 총기도 무료로 제공받고 돈을 확보하면 떠날 대만행 배편도 마련한다. 순조롭게(?) 일을 마무리하고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는 준석, 장호, 기훈은 '일을 갑자기 그만두면 눈치챌 것'이라는 상수만 남겨두고 기훈의 부모님이 계신 동해로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간다. 그 사이 도박장에서 사라진 CCTV 파일이 담긴 하드 디스크에 고위 간부인사들의 영상이 담겨있어, '한(박해수)'이라는 인물이 세 사람을 쫓는다는 이야기.

결론만 말하자면 이만한 배우들을 모셔놓고 이정도의 졸작을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음울한 근 미래의 대한민국(국가의 빚이 1250만 달러이고 IMF도 구제하지 않는 나라)에서 총기규제나 정부의 활약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네 남자는 총기에 대한 제대로 된 연습 없이 작전을 꾸미며 어설프게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지만 이내 한에게 쫓기면서 생과사를 줄타기하듯 도망친다. 기훈이의 부모님, 기훈, 상수의 안위는 다 잘려나갔으며 무슨 터미네이터라도 되는냥 한은 '재밌네' 한 마디를 던지며 주인공들을 사냥한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제목을 가져다 쓰는 인물은 단연 네 남자를 쫓는 한이다.

영화 '파수꾼(2010)'의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윤성현 감독이 똑같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영화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관객들의 기대치는 높아져만 갔고 영화의 장르나 스토리로 보아 찐득한 범죄물이라도 될 줄 알았지만 수없이 드러나는 설정구멍과(쫓기는 주제에 피묻은 옷 입고 태연하게 바에서 술 마시는 장면 진짜...) 악역의 괴랄한 캐릭터 구축, 뭔가 있어보이려고 배경 자체를 어둡게만 만든 상당한 졸작 영화이다. 다만 쫓고 쫓기는 씬은 그 장면들만 떼어다가 이어붙이기만 해도 꽤 준수해 보일 정도로 몰입감 하나는 좋았다. 멀쩡히 활동하다가도 총소리만 나면 툭하면 사라지는 엑스트라들과 마지막에 한을 향해 다짐하는 준석의 독백은 이 영화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졌는지 잘 보여주는 예이다.

아마 코로나가 터지지 않아서 국내에 그대로 정상개봉을 했었다면 관객 300만명은 커녕 100만명도 들지 않고 VOD서비스로 직행했을 영화다. 근미래의 어두운 대한민국과 긴장감만 남긴, 킬링타임용 영화조차 되지 않는 영화 사냥의 시간을 보면서 시간낭비 했던 내 시간을 돌려달라.


+

영화 사냥의 시간을 보고 있으면 한과 마주칠 때마다 멍-하니 가만히 서있는 주인공들이 어찌나 답답한지 모른다. 손에 들고 있는 총을 제대로 활용조차 못하는 남자들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