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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영화 사랑이 뭘까 리뷰

 

부탁할게 많으면 내 역할이 생겨서 좋아.

솔직히 나는 너의 그런 성격이 좀 힘들어.

너의 장점은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식욕이 왕성하다는 것. 그리고 절대 죽고 싶다는 말을 안 한다는 것.

포기만이라도 뜻대로 하게 해주세요.

- 넌 바보야!
- 저도 행복해지고 싶어요.

너도 외로워질 때가 있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니, 정말 다행이네.

사랑? 그게 뭔데?


사랑에 대한 여러가지의 형태.

엇갈린 다섯 명의 남녀에 대한 사랑으로, '사랑이란 뭘까...' 라며 멍한 얼굴로 동네의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읊조리는 영화.

 

사랑에 빠지면 일이고 친구고 다 내팽개치는 20대 후반의 여자 '야마다 테루코(키시이 유키노)'. 친구의 친구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타나카 마모루(나리타 료)'와 동병상련을 느끼며 급속도로 애정행각을 하게된다. 결국 일도 그만둔채 마모루의 집에서 가정주부인냥 살아가는 테루코. 그런 평범한 테루코가 지겨워진 마모루는 우연히 알게된 세상 쿨한 여자, '츠카코시 스미레(에구치 노리코)'와 어떻게 한 번 엮여볼까 늘 노심초사 중이다. 결국 딱히 사귀자는 말도없이 몸부터 섞었던 테루코와 마모루는 관계의 정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채 그대로 몇 달 동안 연락이 두절되고 그 사이 테루코의 절친 '요코(후카가와 마이)'를, 마치 테루코가 마모루를 사랑하는 것 처럼 행동하고 있는 '나카무라(와카바 류야)'를 알게된다. 누구하나 마음에 두지 않는 스미레와 그녀에게 어필하고 싶은 마모루, 그런 마모루를 사랑하는 테루코, 그리고 좋게말해 '사랑'이지 나쁘게 말하면 스토커나 다름없는 나카무라가 요코에게 보이는 행동 등,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구태의연해진 요즘같은 시대에 꽤나 여러 의미를 담고있는 진귀한 영화다.

 

일본영화 사랑이 뭘까는 일방통행 밖에 모르는 '직진녀' 테루코의 사랑에 대한 방식을 주로 그렸다.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사랑해본 경험이 있다면 분명 테루코의 사랑법에 빙의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연인관계나 인간관계나 타산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가면서 맺는 요즘 시대에 희귀종에 가까울 정도로 사랑스럽고 애틋한 그런 여자다 테루코는. 다만 그녀가 사랑에 빠졌던 마모루라는 남자는 너무나 뻔해지고 조금씩 정형화되어가는 테루코와의 연애를 애초부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친구의 친구 결혼식장에서 테루코를 우연히 만난걸 계기로 자신이 원할 때는 언제든 연락해도 곧바로 자신에게 와주고 잠자리도 함께해주는 그녀를 자신이 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 하나로 아무것도 아닌 인간인냥 대한다. 몇 개월 동안 연락이 없다 깊은 밤에 '지금 바로 나와줄 수 있냐'는 물음에도 한달음에 달려오는 테루코보다 쉬운 여자가 마모루에게 또 있을까.

 

 

마모루에겐 너무 쉬운 테루코보다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는 있지만 누구도 쉽게 그녀의 마음을 뺏을 수 없을 것 같은 스미레는 마모루가 평소에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여성상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여자다. 그녀의 주변에선 늘 파티가 벌어지고 세상 쿨한 친구들이 언제나 스미레의 주변에 함께한다. 마모루 또한 세상 쿨한 스미레처럼 행동하고 파티도 함께하지만 여전히 스미레에게 자신을 어필하기엔 아직 많이 모자르다. 한 번은 스미레가 참석한 파티장에 테루코를 부른적이 있었는데 테루코가 스미레와 친해진 걸 알게된 뒤로 스미레를 만나기 위해 테루코를 이용하는 짓도 서슴치 않게 벌인다. 테루코에게는 사랑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스미레에겐 접근조차 쉽지 않은 마모루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을 지언정 테루코보다는 스미레가 더 낫다.

 

테루코의 친구인 요코를 사랑하는 나카무라는 요코와 잠자리도 갖고 그녀가 없을 때 그녀의 어머니와 그녀의 집에서 밥도 먹는 관계지만 요코의 연인은 아니다. 상당히 괴랄한 위치에 있는 캐릭터인데 테루코는 나카무라에게서 자신을 투영하는 계기를 얻게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 자신을 돌아봐주기를 기대하면서 영원히 그 사람 곁에서 그 사람만을 사랑하는 일에 지쳐버린 나카무라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게 요코의 사랑인지 아니면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건지 분간을 할 수 없어, 결국 요코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강제적으로 거둬버린다. 그런 나카무라를 보며 테루코는 바보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나카무라 역시 누군가에게 사랑을 일방적으로 주기만 했을 뿐, 사랑을 받는 감정이라는 걸 겪어보고 싶어서, 그저 행복해지고 싶어서 요코를 떠나게 된다. 나카무라의 현실이 마모루에 대한 자신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한 예측에, 테루코는 요코에게 가서 '너도 외로울 때가 있냐' 며 일갈하지만 테루코의 사랑의 방식 보다 마모루의 사랑의 방식이 더 본인에게 맞는 요코 역시 테루코의 정신세계가 비현실적인 일인 것 만 같다.

영화 사랑이 뭘까는 여주인공의 사랑방식이 수동적이지 않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내고야 마는 테루코의 모습에 일본 현지에 개봉했을 즈음, 많은 일본 여성들이 공감을 했다고 한다. '사랑' 하나면 아무것도 필요없는 테루코는 우리가 한때 사랑에 빠졌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과 사랑, 사랑과 일 중에서 비중을 어디에 더 두느냐에 따라 정작 둘 사이에서 하나만을 붙잡아야 할 순간이 올 때, 평소에 본인이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도 사랑도 완벽하게 해내는 게 가장 좋은 시대이긴 하지만 사랑을 버리고 일에 매진해 봤자 능률이 잘 오를리는 없고 일을 버리고 사랑에 매달려 봤자 금세 헌신짝처럼 차이는게 연인관계다. 하지만 상대를 사랑하고 거기에서 촉발되는 감정들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게 바로 테루코 같은 사람이다.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봤던 경험이 있다면 자신을 이용만 하고, 그게 실리를 추구하는 연락인줄 알면서도 그저 받아들여 줄 수 밖에 없는 바보같은 자신이 싫으면서도 상대에게 또 휩쓸려 가는 모습조차 '사랑'으로 보이는 바보같은 사람이 요즘 세상에도 있을까 싶다. 대개 '호구'로 밖에 쓰임받지 못하는 그런 처지의 사람들은 그냥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만큼 자신을 똑같이, 아니 더 몇 배나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됐으면 좋겠다. 영화 사랑이 뭘까는 누구하나 정상적인 캐릭터가 없는 영화지만 그로인해 더 객관적으로 '사랑의 방식'만을 볼 수 있던 영화였다. 덕분에 영화 자체가 상당히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관객의 몫이 됐지만.

 

영화 사랑이 뭘까 결말에 가서 '서른 세 살이 되면 동물원 사육사나 해볼까' 라며 읊조리던 마모루의 말을 옆에서 듣던 테루코는 같이 동침을 한 다음 날이라 그런지 마모루의 미래에도 자신이 있는 것 같이 느껴져 눈물을 흘렸다. 이런 맹추같이 사랑스러운 여자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용만 했던 마모루는 천벌을 받을찌니.

 

 

결국 테루코는 마모루처럼 되고 싶어, 자신이 사육사의 길로 접어들며 영화가 끝이난다.

 

하긴, 살다보면 자신을 한없이 사랑해주는 사람(특히 이성관계)을 만나게 되는 날도 있다. 분명 내가 그 사람에게 많은 사랑을 준 건 아닌데도 말이다. 천성이 사랑이 많거나 아니면 나를 정말 너무 많이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정말 끔찍할 정도로 그런 상대가 싫은게 아니라면 대개 받아주고 받은만큼 사랑을 주는 게 남자인데(특히 나!) 마모루는 그렇지 않았다. 테루코가 자신을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게되자 어장관리라 하기에도 못 할 정도의 거리에서 테루코를 필요할 때만 써먹었다.

 

비단 영화라서 극단적인 형태로 마모루의 행동이 발현된 걸수도 있겠지만 다른 여자 만나려고 테루코를 불러내는 건 좀 심한거 아닌가? 게다가 술 마시다 여자 생각이 나서 야밤에 테루코를 찾는다던지... 대개 요딴 남자들을 보고 뭇 여성들은 '나쁜남자 스타일' 이라고 애써 포장하는 걸 간혹 볼 수 있는데 그냥 어장관리하는거고 당신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남자에게 주긴 좀 아까운, 마치 10원짜리라고 여기는 놈들이다. 그냥 얼른 끝내고 자신을 한없이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시길.

 


+

영화 사랑이 뭘까 여주인공 키시이 유키노는 이 영화에서 처음 보는 여배우인데 심봉선과 아이유를 반반씩 섞은 얼굴을 하고있다.

 

영화 속에서는 상당히 사랑스럽게 나오는데 마모루자식 나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