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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영화 들리나요? 리뷰

 

- 청춘들이랑 소통할 때 '내가 이것 만은 포기 못하겠다' 하는게 있나요?
- 마이크랑 엠프가 정말 좋아야돼요. 시각보다 청각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난 싸움이 싫거든? 근데 집에서 폭력적인 걸 너무 많이 보면서 큰거야. 그러니 내가 제주도가 좋겠어?

아버지 90살이 다 되가지고 귀 고쳐불었다가 죽어버리면 뭐할거야.

가해자하고 피해자하고 기억하는게 다르다니까~

엄마는 엄청 순한 사람이었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만든거지.

 

아버지는 제게 숙제같은 존재예요.

인간에게는 세 가지 스트레스가 있대요. 첫 번째는 자기가 원하는 게 있는데 못할 때. 두 번째는 원치않는 일을 해야할 때. 그리고 그걸 반복해서 해야할 때. 마지막 가장 큰 스트레스는 나이가 들었는데 자기가 뭘 원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래요. 원하는 걸 알지 못하면 사람은 원망이 생긴다고 합니다. 누굴 원망할까요? 남편, 와이프, 가족, 회사, 시대. 그리고 가장 심한 원망은 그렇게 선택하고 살아버린 자기 자신.

 

지금이 힘드냐 안 힘드냐를 결정하는 건 자기가 가장 힘들었던 때를 기준으로 한대요.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땐 해병대에 있을 때였어요. 매일 맞고 괴롭힘 당하고... 그래서 지금 힘들 때 늘 생각하는게 있어요. "사람들이 때렸어?", "강연듣고 감동받고 가는데 사람들이 때렸어?", "촬영팀이 너 때렸어?"

난 남편없이 살아보는 게 소원이야. 한 달이라도.

 

창옥아 느그 애비가 일을 안 한지 17년이 됐다잉. 근데 새벽 6시, 오후 1시, 저녁 6시. 세 끼 꼬박 생겨드신대요.

 

- 어머니, 수술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 이혼할겨. 안 살겨. 지금 안 들려도 저렇게 잔소리를 하는데 들리면 얼마나 할겨.

아버지가 술을 먹는 걸 많이 봤잖아. 아버지가 술 안 먹으면 젠틀해 항상. 아버지가 집안의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건 항상 술. 술은 모든 문제의 시작이야 항상.

 

애들 정서에 가장 안 좋은게 뭔지 아세요?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의 정서가 안 좋은게 아니고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크면서 계속 본 아이들이에요. 아이들이 크면 자기 의견을 내게 되요. "엄마, 아빠 왜저래?" 그럼 엄마가 말합니다. "아빠한테 말이 그게 뭐니! 아빠 이중인격자셔!"

 

아주 유명한 가수가 이런 노래를 불렀어요.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난 혼자였지. 오늘 밤은 삐딱하게.' 저는 이 가사에 일부 동의해요. 영원한 것은 절대 없어요. 그래서 허무한가요? 아니요. 그래서 찰나가 소중한 거예요. 이렇게 말씀드릴게요. 영원한게 없으니 영원하려고 하지말고 지금 이 순간은 너무 고맙다. 내 인생에 얼마 안 되는 이 순간을 기뻐해야지. 고마워하고 즐거워하고 누리시고 그러시면 좋을거 같아요.

우와~!


 

자칭 타칭 소통전문가 김창옥 교수가 보여주는 그의 가족사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

굳이 영화로 만들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소통 전문가 김창옥 교수의 다큐멘터리다. 최초 이 영화를 기획한 이유는, 4천만원이 드는 김창옥 교수의 아버지 귀 수술 후 김창옥 교수와 그의 아버지간의 대화를 담으려고 진행한 프로젝트지만 의외로 김창옥 교수의 인간적인 면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 영화다.

내가 김창옥 교수를 처음 보게된 건 2012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이라는 짧은 강연 영상에서였다. 제목은 '나는 당신을 봅니다.' 교회에서 누군가가 청년부 예배 시간에 틀어줬는데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언제봐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 김창옥 교수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창옥 교수를 나처럼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그의 가정사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제주도 출신이고 고령의 부모님이 있으며 형제들은 총 6남매. 김창옥 교수는 형제들중에 가장 막내라서 지금도 막둥이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통 전문가로, 상당히 많고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했던 강연들은 유튜브와 온라인에서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 역시 유명하다.

하지만 영화 들리나요?에 등장하는 김창옥 교수는 어마무시하게 외로운 인간이었다. 특히 주변 동료들이나 선후배들이 이야기하는 인간 김창옥은 허세 많고 수입차, 비싼 시계를 차고 다니며 과시하려는 욕구가 상당히 많은 존재로 비춰진다. 그리고 강연대 앞에서는 그 누구 못지 않은 화려한 언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주는 강연자이지만 정작 본인의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지는 못하는 외로운 존재다. 특히 카메라가 어딘가에서 돌기 시작한다는 걸 인지했을 땐 본인을 숨기고 소통 전문가 김창옥을 '연기' 한다는 지인들의 인터뷰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이번 다큐멘터리 역시 조금 가공된 김창옥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가 그나마 일반적으로 보일 때는 다큐멘터리의 주된 이슈인 아버지를 이야기 할 때 뿐이다.

당신의 젊은 시절, 술과 노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모습들과 가정폭력, 어머니의 희생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대한민국 가부장적인 가정의 모습 속에서 김창옥 교수는 살아왔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아버지의 영향 덕분에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인터뷰를 한다. 나 역시도 마치 우리집을 보는 듯한 김창옥 교수의 부모님을 보면서 우리가 익히 그의 입을 통해 들어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김창옥 교수의 가정사를 한꺼풀 더 벗겨낸 이 다큐멘터리 덕분에 김창옥 교수가 더 복잡하고 더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주요 포커스는 김창옥 교수 아버지 귀에 쏠려있지만 인간 김창옥을 완벽하게 이해하는데에는 미수에 그친, 조금 아쉬운 다큐멘터리이다.

강연을 할 때 늘 젠틀하고 깔끔한 이미지로 청중들과 시청자들에게 신뢰성 짙은 모습을 보여주던 김창옥 교수가 알고보면 자신의 가정에서조차 소통이 안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엔 과연 행복이란 뭘까 라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된다. 남들에겐 '행복하세요~ 소통하세요~' 라고 열심히 강연하고 와서 집에서는 녹초가 되어 누워만 있게 되는 삶. 영화 중간에 김창옥 교수는 허리가 좋지 않아, 보호대를 착용한 채로 스케쥴을 소화하는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해가며 무리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김창옥 아카데미의 대표직까지 맡고있는 위치라서 단 한 순간도 마음놓고 쉴 수 없는 김창옥 교수의 모습들은 시종 유쾌하고 밝은 그의 면과 대조적으로 꽤나 심각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친구나 동생들에게 툭툭 뱉는 이야기하는 그의 일상의 모습들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나처럼 김창옥 교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 되시겠다.

김창옥 교수와 친분이 있는 곽도원 배우도 잠깐 등장해서 특유의 웃음소리를 들려준다.

 

김창옥 교수의 친구 중 하나가 인터뷰한게 기억이 난다. 소통 전문가 김창옥 교수가 무대에서 내려와, 일상 생활에서 친구나 가족, 지인들과 절대로 소통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평소엔 전력을 다해 자신의 에너지를 100% 써가며 커리어에만 몰빵하는 캐릭터라서 다른 사람들의 사정과 이야기를 들어줄 여력이 없다고. 그래서 복잡하거나 자질구레한 일들은 일부러 피하면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였다. 강연 한 번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는 사람인데 과연 평소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애석하게도 인간 김창옥에 대한 이야기는 심도있게 파고들지 않아서 혐의만 남긴채 영화가 끝난다. 물론 김창옥 교수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처음으로 맑은 소리를 듣게된 당신은 영화 후반에 계속 '와아' 하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김창옥 교수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가족분들이 이야기하는 가정사를 들으면서 우리집과 상당히 비슷한 상황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 그 시절 가부장적이고 술만 먹으면 개가되던 우리 아버지들은 당신들이야 지금에 와서야 어떤 이유가 있었기에 그랬었다고 변명을 하지만 어린 자녀들이 보기엔 다 개소리에 불과하다. 영화 '똥파리(2008)'에서 양익준이 내뱉은 대사, '우리나라 애비들은 집에만 오면 지가 김일성인줄 알어'라고 일갈하는 장면들이 오버랩 된다. 아무튼 김창옥 교수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술에 찌든 우리 아버지를 보면서 컸기 때문에 술은 일절 입에 대지도 않는 삶을 살고 있다. 행여나 술을 마실 자리가 생겨도 취할 정도로 마시지도 않고 평생 술에 취한 적도 거의 없다.

어찌됐든 소통 전문가 김창옥 교수가 아니라 인간 김창옥을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영화다. 영화에 등장한 그의 강연 영상에 나온 말들, 가족과 김창옥 교수가 영화 들리나요?에서 했던 말들 모두 일상적인 언어와 강연용 언어를 넘어, 한자 한자 받아적어야 했던, 주옥같은 이야기들이었다.

 


 

 

+
유명인들이 자신의 가족을 대중들에게 밝히는게 의무는 아니지만 나는 당연히 김창옥 교수의 강연이나 인터뷰들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결혼과 자녀들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길래 미혼이거나 혹시 게이가 아닐까 생각을 했었는데 결혼도 진작에 했고 자녀도 (아마)셋이나 있는 가정의 가장이었다. 영화 들리나요?에 그의 자녀들이 아주 잠시 등장한다.

 

++
영화 들리나요?는 CGV아트하우스에서 상영중이다. 들리나요 상영관은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인디영화 특성상 상영 시간이 괴랄해서 그렇지...). 김창옥 아카데미가 공동 투자와 제작을 겸한 영화라 의외로 예술 영화 전문 상영관에서는 상영을 하지 않는다. 난 당연히 CGV 아트 하우스에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