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week 1 movie

영화 사라진 시간 리뷰 쿠키영상 없음

 

내가 오늘 당신을 분명히 죽였어!


 

왜 배우와 감독의 경계선이 나뉘어져 있는지 확실히 증명하는 영화.

외지에 살다가 시골로 이사간 젊은 부부가 있다. 여자는 밤마다 빙의를 해, 온갖 난동을 피우고 남자는 그런 아내를 언제나 따뜻하게 보살핀다. 시골 분교 교사인 '남편(배수빈 / 김수현 역)'은 어느날 밤 자신의 집 밖에서 과일을 가져다 주려 들렀다가 '부인(차수연 / 윤이영 역)'의 상태를 목격한 이웃주민인 '정해균(정해균 역)'에게 사실을 숨겨달라 간청을 하지만 이내 마을 전체에 교사 아내의 소문이 쫙 퍼진다. 결국 불안함에 휩싸인 마을 주민들은 밤에만 선생의 부인을 옥탑방에 가둬두기로 결심하고 남편 역시 이내 수긍하며 하루하루 아내의 감금상태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은 신혼부부라서 남편은 아내와 함께 감금되기를 희망하고 정해균은 마지못해 두 사람을 옥탑방에 (밤에만)가둬두기로 하지만 아랫층에서 누전으로 불이나, 결국 두 부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시골 부부 화재사건을 맡은건 '박형구(조진웅)'라는 형사. 용의자를 마을 사람들 전체로 지목하는 형구는 시골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의 생일잔치에 초대되고 어쩔 수 없이 마을 사람들이 건네준 송로주를 마시고 깊은 잠에 빠진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자신의 삶 전체가 뒤바뀌어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이야기.

 

 

영화 사라진 시간은 코미디 영화인듯 스릴러 영화인듯 어디서 많이 보고 베낀 장면들이 즐비한 괴랄한 영화다. 배우 정진영이 직접 연출과 각본까지 맡은 이 영화는 중-후반부 까지 굉장히 섬뜩한 소재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밤마다 특정인물로 빙의하여 남편과 알콩달콩(?)살아가는 젊은 아내, 그리고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몸까지 선뜻 감금당하는 남편. 두 사람이 측은하긴 하지만 밤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마을 사람들. 독특하면서도 코믹하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등장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영화의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그리고 주인공 박형구는 수사를 위해 시골 마을로 접근하면서 용의자를 한 명씩 지목해가며 최선을 다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는 생일상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넙죽 받아먹은 송로주를 마시기 전까지.

 

다음날 눈을 떠보니 불에 탄 신혼부부의 집은 멀쩡한채 복원되어 있고 누군가 짜증나게 아침부터 전화를 해대서 받아보니 분교의 교장선생이 왜 출근을 하지 않느냐며 타박한다. 성질이 잔뜩 난 박형구는 투덜대며 일어나지만 그 곳은 자신의 '아내(신동미 / 전지현 역)'와 아들 둘(두 아들 이름은 박지성과 박주영)이 있는 집이 아니라 수사를 진행하던 신혼부부의 집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형사가 아니라 분교의 선생으로 주변인물 모두가 인식한다. 하루아침에 형사에서 교사로 신분이 바뀌어버린 주인공 박형구. 어떻게 해서든 진실과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를 밝히려고 고군분투한다. 마을 사람들을 겁박해서 거짓말 하지 말라고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심지어 정해균의 몸에 불까지 질러, 그가 소유한 비닐 하우스 채로 방화를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박형구가 불태운 건 정해균이 아니라 고라니였고 증거가 없어 유야무야 방화사건은 잊혀진다.

조금씩 채념해 가며 선생의 삶에 적응해 가려 노력하는 박형구. 정해균이 소개해준 정신과 선생과의 상담 날, 동창 모임에 같이 참석하라며 박형구를 초대하는 마을 사람들. 그 자리에서 정해균과 불륜을 저질렀던 정해균의 동창, 미경을 만난다. 그녀는 다름아닌 자신이 형사였던 기억에서의 아내.

미경으로 변해버린 아내를 보면서 이미 많이 채념했지만 두 아들들을 잘 키워달라며 이상한 말을 하는 박형구. 미경은 왠지 꺼림칙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어느날 박형구는 자신이 방과후에 들러 열심히 참석했다고 하는 '뜨개질 수업 선생(이선빈 / 초희 역)'을 우연히 만난다. 박형구가 아직 형사였던 기억에서 주차를 이상하게 한 차를 자신의 차로 긁은 뒤 늦은 밤이라 사고 차량 와이퍼에 자신의 연락처를 적었다가 다음 날 아직 차주인이 확인하지 않은 자신의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그대로 주머니에 구겨넣은 채 '이쪽(분교 선생의 기억)'으로 넘어온 그. 며칠 전, 교장이 전화를 걸었을 때 그 쪽지를 보고 자신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번호로 나왔던 그 번호를 보고 초희는 2년 전에 사용하던 자신의 전화번호라고 박형구에게 이야기한다.

모든 상황들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2년 전부터 자신을 스토킹해온게 아니냐며 박형구에게 은근히 마음을 보여주는 초희. 끝내 박형구의 집에 놀러와 저녁까지 얻어먹는 사이가 되었지만 자신에겐 병이 있다고 갑자기 박형구에게 고백을 한다. 그건 바로 신혼부부 선생의 와이프가 앓고 있던 밤마다 다른 사람으로 빙의하는 정신병. 그 이야기를 들은 박형구는 '괜찮다' 라며 울고있는 초희를 다독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엔 '참 좋다' 라며 갑자기 영화가 끝이난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상당히 관객에게 빅엿을 먹이는 듯한 안일한 엔딩을 보여주는 영화다. 왜 박형구가 선생으로 변하게 됐는지 초희와 박형구가 쓰던 전화번호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박형구가 영화 초반 형사였을 때 수사했던 정해균과 미경이의 불륜사실을 두 사람 밖에 몰랐는데 '이쪽'으로 넘어온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인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채 영화가 갑자기 끝난다. 감독과 각본을 쓴 정진영은 열린 결말에다 박형구가 형사에서 선생으로 넘어간 상황들은 꿈은 아니라고, 빙의하는 아내를 둔 선생의 인생을 그대로 이어 받은 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관객이 생각하는 모든 느낌들이 다 맞다고 한다.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씨부리면서 감독입네 하는건지 이해가 1도 안되는 영화이다. 영화 초-중반부까지는 그럴듯하게 진행되면서도 끝끝내 시나리오를 쓴 감독 본인조차 '에라 모르겠다' 하고 끝내버리는 무책임한 영화다. 따라서 관객이 생각하는 모든 해석들은 다 정답이고 영화 '사라진 시간 해석' 이라며 자신들의 생각을 뽐내는 사람들의 말들도 모두 맞다. 명확한 결말이 없으니 명확한 정답도 없다. 어디서 보고 들은 건 있어서 열린 결말 운운하는데 자고로 열린 결말을 지닌 훌륭한 영화들은 영화 사라진 시간처럼 지 멋대로 날뛰지는 않는다. 개연성도 전혀 없고 그냥 싸지르면 되는게 열린 결말을 지닌 영화가 아니라는 소리다.

영화 사라진 시간을 보고나면 정말 사라져 버린 본인의 시간(런닝타임 105분)이 참으로 아깝다고 느끼게 된다. 한 시간 반 동안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들은 엄청나게 많다.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히 시간을 들여 사랑을 나눌 수도 있으며 넷플릭스에서 한 편당 20분이 채 되지 않는 미드를 여유있게 다섯 편 정도 볼 수 있다. 못 보고 놓쳤던 훌륭한 영화들을 다운 받아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콘솔 게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말에 소파에 기대어 엔딩으로 향하는 머나먼 여정을 살짝 떠날 수도 있는 아주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배우와 감독의 역할이 왜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영화다. 영화 '기생충(2019)'에 출연했던 명배우 송강호가 봉준호 감독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봉준호 감독님은 직접 콘티를 손으로 그려서 보여주고 우리는 그 만화로 된 콘티를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어쩔 땐 연기가 막혀 봉준호 감독에게 조언을 구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우리 배우들보다 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 봉준호 감독을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봉준호 감독이라고 배우를 하고 싶지 않을까? 감독과 배우는 명확하게 그어져 있는 선 같은 것이다. 정진영 배우는 그 선을 자기 꼴리는대로 넘었고 덕분에 영화 사라진 시간은 2020년 최악의 한국 영화 1순위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
정진영 배우가 감독직과 각본까지 쓴 영화 사라진 시간을 나 역시 관심은 1도 두지 않았었는데 네이버에 쓴 영화 기자들의 별점 덕분에 오랜만에 낚여서 나의 아까운 1시간 35분을 그냥 허공에 버려버린 고딴 영화가 되었다.

진짜 다들 지랄하고 자빠졌다.

영화를 알쏭달쏭하게 만들어, 전혀 앞-뒤 맥락 없이 싸질러 놓고 '짠- 이런게 예술이랍니다-' 라고 하면 대중문화는 다 똥이고 쓰레기더미들이다. 정진영 배우에게 돈을 받았는지 신세를 졌는지 평소 친분이 있는건지 뭔지 이 멍청한 영화에 평점 높게 준 기자-평론가들은 다 마우스 부여잡고 반성 좀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