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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괴물 신인의 등장 - 영화 미성년 리뷰

 

 

 

너네 엄마가 먼저 우리 아빠 꼬셨어. 불륜 진행중이야.

 

 

 

 

- 당신 저 방에서 잔지 한 이 년 됐어.
- 혼자 자버릇하면 혼자 자는게 편해.

 

 

 

 

축하한다. 너 때문에 우리 집은 이제 지옥이야.

 

 

 

 

성욕이야 사랑이야?

 

 

 

 

나한텐 불륜의 증거. 쟤한텐 출산의 증거.

 

 

 

 

- 이제 그만하고 싶어.
- 넌 살아있잖아.

 

 

 

 

- 니네 이러면 진짜 나중에 큰일나.
- 거짓말.

 

 

 

 

미치도록 얄미운 신인 감독 김윤석.

 

같은 학교에 다니는 '주리(김혜준)' 와 '윤아(박세진)'. 주리의 아빠 '대원(김윤석)' 과 윤아의 엄마 '미희(김소진)' 가 불륜 사이라는 걸 알게된 두 사람은 미치도록 치고 받지만, 어느날 주리의 엄마인 '영주(염정아)' 가 그 사실을 알게되고 미희의 뱃속에 남편의 아기까지 가진 사실을 알게된 뒤, 다섯 사람이 보여주는 한 편의 소동극.

처음 김윤석 배우가 감독직까지 겸하며 영화 미성년을 찍었다는 사실을 보고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주로 하드보일드한 영화의 쎈 캐릭터만 도맡아서 해온 배우가 이런 감정선 짙은 영화를 잘 풀어냈을까 걱정했었는데 무서우리만치 섬세한 감독 역량을 뿜어내는 김윤석 감독의 탁월한 실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김윤석 배우 겸 감독은 영화의 연출과 조연, 심지어 대본까지도 손수 집필했다).

아버지는 강원도 카지노에 빠져 연을 끊다시피 살고있고 엄마가 운영하는 오리집은 한 달 월세도 못 내는 형편의 윤아. 용돈벌이는 스스로 하고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어느날 부터 엄마의 배가 불러오는 걸 보고 결국 아이의 아빠를 잡아내는데 성공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주리는 그럭저럭 유복한 집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윤아가 내민 불륜의 증거 덕분에 하루아침에 지옥같은 가정으로 변해버린다.

 

얼핏 김성균을 닮은 박세진 배우

 

조강지처의 신분을 감추고 내연녀의 가게에 몰래 찾아간 영주는 이미 배가 많이 불러있는 미희를 보고 홧김에 그녀를 밀치게 되고 그 바람에 미희의 뱃속에 있던 주리와 윤아의 남동생은 예고도 없이 세상에 나온다. 그 혼돈 속에서 모두들 미쳐갈 때 주리의 아빠인 대원은 얄밉게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아빠도 입원비도 없는 아들의 엄마인 미희는 내키는대로 살아간다.

 

 

결국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사라져버린 남동생의 시신을 처리해야하는 주리와 윤아. 어른들이 나몰라라 현실도피만 할 때, 불륜으로 인해 부서진 가정에 이토록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영화 미성년은 저예산 독립영화 처럼 흘러가는 공기가 좋았다. 전개도 쉴새 없이 빠르고 무언가 정리 되는가 싶으면 곧이어 다른 문제가 터진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수작이며 배우들의 연기, 대사, 배경까지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마치 모든게 톱니바퀴 맞물리듯 착착 흘러가는 좋은 영화다. 주리의 엄마가 윤아와 만났을 때 '너희 지금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야' 라고 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두 소녀는 마치 보란듯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려하고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한다. 어른 세 사람(윤아네 아빠까지 치면 네 사람)이 충격에 그만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그 때에. '불륜' 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이토록 미화시키지 않고 현실적이게 그린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영화다. 주리네 엄마의 사정, 윤아네 엄마의 사정 모두 등장하긴 하지만 정답을 내리는 건 주리와 윤아다. 결말 부분이 조금 그로테스크 하긴 하지만 여고생의 눈높이로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적재적소에 뜬금포처럼 등장하는 조연들의 감초 퍼레이드는 평소 김윤석 배우가 충무로에서 주-조연 시절에 옆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수 십번 수 백번 갈고 닦은 실력임을 입증시켜주는 장치들이다.

 

"너 쟤 한테 돈 뜯기고 그랬니?"
"주차비로 만원만 줘봐요"
"애엄마가 애 놓자마자 과자 먹고 그러면 돼?"

 

김윤석이 연기한 대원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특성처럼, 정작 사건의 한 가운데에 있는 장본인이면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면이 참 얄미웠는데 영화를 연출한 김윤석 감독의 연출 역시 너무 말도 안될 정도로 몰입도가 강해서 진짜 얄미워 보인다. 연기도 잘하고 연출까지 잘하면 입봉을 준비하는 신예 감독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중년의 배우들은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과격하고 무덤한 외모 속에 이정도로 섬세한 감성이 살아 숨쉰다는 걸 몸소 보여준 김윤석 감독의 데뷔작 미성년이었다. 입봉 하자마자 차기작이 너무 기대되는 신예 감독이 된 김윤석 배우의 앞날이 궁금하다.

더불어 500대 2의 경쟁률을 뚫고 주리와 윤아 자리를 꿰찬 당찬 두 여배우인 박세진과 김혜준의 미래도♥︎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핫 한 여배우들 네 명을 끌어다 모은 것 같은 영화다. 염정아, 김소진, 박세진, 김혜준의 연기들이 아주 거의 미친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