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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르소나 리뷰

 

러브 데스 로봇에 이어 요즘 열일하는 넷플릭스의 신작 단편 옴니버스 영화, 페르소나가 공개됐다. 원래는 2019년 4월 5일에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강원도 산불 때문에 4월 11일로 공개일이 늦춰졌다. 늦게 공개된 이유는 산불 이슈 때문에 페르소나의 이슈가 상대적으로 반감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 보다, 네 편의 영화중 한 편에 실제로 산불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

가수 아이유가 아닌, 배우 이지은의, 이지은을 위한, 네 명의 감독에 의한 영화다. 이지은을 주인공으로 각각의 감독들이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들로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영화들을 묶었는데, 그래서 타이틀 또한 '페르소나(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 을 뜻한다. 흔히 작가주의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영화 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대역으로서 특정한 배우와 오래 작업을 하는데 이 때 배우가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다)'다. 감독들이 배우 이지은을 떠올렸을 때 이런이런 역할이 어울리겠다 고 생각해서 연출한 작품들이기에 페르소나의 정식적인 명칭에 정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온 영화지만 평소 네 명의 감독이 아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네 편의 영화들중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작품은 바로 페르소나의 메인 썸네일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 '러브 세트' 다. 이지은을 가수명인 아이유 그대로 사용한게 포인트인 것 처럼 일반 대중들이 그녀에게서 소비하고 있는 외적인 성적 요소들만 노골적으로 드러낸 영화다. 아이유를 (가창력이 좋아서)굉장히 좋아하게 됐지만 일반적인 팬 입장에서 단 한 번도 아이유를 이런식으로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남자팬이지만 굉장히 불편했던 영화다. 나머지 세 개의 에피소드 들은 그로테스크하거나(썩지않게 아주오래), 밍밍하거나(키스가 죄), 가슴에 깊이 남는 정도(밤을 걷다). 영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짧디 짧은 단편들이라서 배우 이지은을 이렇게 휘발되게 놔둬도 되나 싶지만 온라인 전용 영화라 그닥 많은 사람들이 볼 일은 없을거라는 생각에 그러려니 한다. 정식으로 극장에 걸렸다면 욕 깨나 먹었을 법한 작품들이다(이 영화를 기획한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의 윤종신은 얼른 정신을 차리길 바란다).


 

러브 세트
love set

너 남자들이랑 테니스 칠 때 이상한 소리내지마.

테니스를 치는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나 남자와 남자가 경기를 할 때는 몰랐지만 남자와 여자가 함께 테니스를 치니, 이토록 야릇한 상상을 할 수 있음에 이경미 감독의 센스에 허벅지를 탁. 쳤다. 테니스를 치는 남자는 아이유의 '아빠(김태훈)'였고 그와 함께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테니스를 치는 '여자(배두나)'는 아이유의 영어선생이자 아빠의 연인이었다. 곧 결혼식을 올리려는 두 사람 사이에 아이유는 이유없이(?) 질투를 느끼며 미래의 새엄마가 될 여자에게 '내가 당신을 이기면 우리 아빠 포기해' 라고 으름장을 놓고, 미래의 아이유의 새엄마가 될 여자는 '내가 이기면 네가 너희 아빠 포기해. 아니, 네 남자친구랑 결혼해라' 라며 이상한 내기를 시작한다. 카메라 앵글을 보면서 '이 영화는 분명히 남자가 찍었을 것이다' 싶었는데 영화 '미쓰홍당무(2008)' 를 연출했던 이경미 감독이었다. 페르소나의 첫 에피소드인 러브 세트는 대중들(특히 변태같은 남자들)이 아이유를 바라보는 시선을 카메라에 모두 담았다. 성숙한 여성을 흉내내려 가슴에 어마어마한 뽕을 집어넣고 어깨를 펴는 장면이나 초경이나 다름없는 무릎의 상처가 하얗디 하얀 양말과 운동화에 질질 흐르는 모습. 특히 그 피는 '절대 생리혈이 아니야' 라는 듯 아이유의 엉덩이부터 다리까지 슬로우 모션으로 잡아낸다. 뭘 은유하고 싶은지 분명히 알겠는데 그 방법과 표현이 심히 노골적이라 오히려 반감을 사는 영화였다. 파더 콤플렉스처럼 보이지만 성숙한 여성에게 결국 동정을 받아내는 아이유의 모습이 좀 짠한 영화다.

썩지않게 아주오래
collector

 

넌 처음부터 특별했고 비밀이 많았어.

오빠한테 여자란 뭐야? 누가 그러더라, 남자는 여자랑 자기위해 대화하는 거고 여자는 남자랑 대화하고 싶어서 자는 거라고.

오빠랑은 대화하는게 너무 재밌으니까 우리 앞으로 통화만 할까?

- 나 너 사랑해. 오빠 마음 안 느껴져? 내가 어떻게 해야돼?

- 모르겠어. 지금 그냥 아무것도 안 느껴져. 오빠는 좀 멋있지가 않어. 제발 좀 단 한 번 만이라도 멋있었으면 좋겠어 제발. 그리고 사랑이 뭔데? 참사랑을 좀 보여줘봐. 그런게 있으면 나한테 좀 보여봐 주라고. 마음을 꺼내서 나한테 좀 보여봐. 여기다 좀 내놔보라고. 못하지? 그지? 진짜 그렇게까지 하는 남자는 요새 한 놈도 못봤어.

네 개의 에피소드들 중 가장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작품. 아마 썩지않게 아주오래 때문에 19금 딱지가 붙은 것 같다. 심하게 자유분방한 새롭고 어린 연인 때문에 가정도 내팽개치고 은에게 달려갔던 남자 정우(박해수). 갑자기 연락도 없이 일주일 동안 해외에 외국인 남자 둘이랑 여행을 다녀온뒤 알듯말듯한 말들만 정우에게 내뱉는 은. 결국엔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참사랑' 을 꺼내어 그녀에게 줘버린다는 내용. 살면서 이런류의 여자들을 많이(?) 만나봤다. 어린 나이나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남들에게 사랑과 칭찬을 받는 그런 여자들. 세상 참 쉽게 살아가는 것 같이 보이는 예쁜 여자들 말이다. 제멋대로 굴어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상대는 그런 그녀에게 더 잘보이려 애쓰는데 쉽게 말해서 '호구' 잡히기 딱 좋은 여자들이다. 좀 과격하게 표현됐을 뿐이지만 한없이 쿨하고 누구보다 자유분방한 사랑을 하는 은에게 정우는 자신의 목과 심장이 날아가면서도 끝까지 그녀에게 맞춰주려 노력한다.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때려칠 줄도 알아야 호구잡히지 않는 삶을 살수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예쁜 여자에게 느껴지는 그 이상한 낌새가 90% 정도는 맞는 일이 태반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남자들이여.

키스가 죄
kiss burn

-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

- 넌 아직 모르겠지만 키스할 때는 제정신이 아니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 어디로?

- 나도 모르게 움직이고.

- 어떻게 움직여?

- 그냥 나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는 거야.

- 몸을 움직여...

- 응. 그래서 스트레스가 싹 풀려.

- 너도 스트레스가 있어...

- 그런가봐.

영화 소공녀(2018)의 전고운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썼다고 해서 기대했던 단편이지만 심각할 정도로 재미가 없다. 바닷가에서 모르는 남자와 키스를 하다가 쇄골과 목 부분에 찐한 키스마크를 달고 온 딸(혜복 / 심달기)의 머리를 자르고 학교도 보내지 않던 아빠(정근 / 이성욱). 그런 친구가 걱정돼 친구네 집을 찾은 한나(이지은). 아빠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집안 모든 곳을 미끄럽게 만들지만 늘 소송에 바쁜 아빠는 한 번도 제대로 넘어지지 않고, 서로 맞담배를 피우며 푸념을 하는 사이 닭장에 불이 붙어 산을 다 태운다는 이야기. 심달기나 이지은의 캐릭터는 귀엽고 소박하지만 눈에 띄는 특징하나 없는 주인공들이라서 구색 맞추려고 쑤셔넣은 느낌이 짙은 단편이다. 후반부의 산불 씬 때문에 영화 공개가 늦어진게 정설이다.

밤을 걷다
walking at night

- 뭐 그렇게 우울한 얘길 해. 뭐 죽는다니 그런거.

- 그거야 내가 죽었으니까. 잊었어?

울지마. 꿈에서 깰라.

- 왜 죽었어?

- 외로웠어. 끝이 없이. 끝이 보이지 않게.

- 내가 너 외롭게 했어?

- 아니. 니가 항상 내 옆에 있어줬지. 나를 아는 사람이 있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어. 나를 아는 사람중에는 너가 있었고 너 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어. 나는 너 외의 사람들한테 외로움을 느꼈어. 나를 아는 수 많은, 너를 제외한 그 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모습들에 외로움을 느꼈어. 니가 항상 옆에 있어줬는데. 부질없이 괴로워 했네. 죽을 때 까지.

꿈도 죽음도 정처가 없네. 가는데 없이 잊혀질거야.

우리는 여기에 있는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다 사라지고 밤 뿐이네.

안녕.

앞의 세 작품은 바로 이 단편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영화. 흑백의 밤에 남자와 여자가 길을 걸으며 대화한다. 알고보니 지은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고 k(정준원)는 꿈에서나마 그녀를 만지고 느낀다. 연인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감정을 텍스트 몇 개로 이렇게 잘 살려냈다. 앞서 등장했던 미성숙한 아이유, 치명적인(...) 이지은, 어린아이같은 이지은 보다 가장 배우 이지은 스러운 감정연기와 대사 톤이 참 마음에 든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영화 '최악의 하루(2016)' 와 '더 테이블(2017)' 을 연출했던 김종관 감독. 주요 플롯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미 흑백인 화면 안에 조명만으로 다시 한 번 흑과 백을 연출하는 기법이 좀 무서울 정도로 멋진 연출력을 지닌 감독이다. 이지은 주연의 페르소나를 보려면 이 '밤을 걷다'만 보면 90% 이상은 감상한 거다. 이지은을 주연으로 김종관 감독이 상업 장편 하나 찍었으면 하는 바램. 많이 어두운 내용의 영화지만 이지은이 뱉는 저 감정들이 뭔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쓰리다.


너무 배우 이지은에 많이 기대며 쉽게 가려는 경향이 보이는 러브 세트, 썩지않게 아주오래, 키스가 죄 빼고 밤을 걷다 하나만 볼만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르소나였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로리타 이슈로 홍역을 치룬 뒤 아티스트가 된 아이유는 미성년이나 성숙하지 않은데 성숙한 '척' 하는 캐릭터 보다 오직 '연기' 만으로 승부를 보는 캐릭터성 없는 캐릭터가 더 어울리게 됐다. 배우 이지은에겐 충무로에 진입하기 직전의, 뭔가 워밍업 같은 느낌의 단편선이다. 자신을 믿고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들어도 될 듯. 이왕이면 김종관 감독하고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