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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버드박스 리뷰

 

 

 

엉뚱한 일에 집중하면 이상하게 편해지더라.

어떻게 저기서 살아있지?

생각하지 마. 내가 말한 대로 해. 아니면 죽어. 내 말 알겠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도와주려고 하지 마. 난 잊어버리고 살아남아야 해.

 


 

 

상상력 하나로 이정도의 공포를 전달할 줄이야.

의문의 사건이 일어난다.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은 무언갈 보게되고 '그' 무언가를 보게된 이들은 자신의 몸에 극단적으로 상해를 입히며 자살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 세계에서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생존하게 된다는 이야기.

영화 버드박스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실체가 없다. 영화가 끝날때까지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관객이 상상만 하도록 유도하기만 한다. 미증유의 존재들이 지구에 등장하고 그것들을 두 눈으로 본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한다. 자신의 의지는 상관이 없으며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톰 / 트래반트 로즈)도 이내 스스로의 손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세상이 됐고 임산부가 혼자 살아남았어' 라는 설정 하나로 기막힌 연출력을 보여주는 영화다. 정신적, 그리고 시각적인 폭력이 되어버린 좀비물이나 크리쳐 영화, 귀신이 등장하는 호러영화에 질려버린 사람들을 배려했는지 관객이 버드박스 같은 영화에 기대하는 장면들은 1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무언가를 본 사람들이 어떻게 죽는지는 심각할 정도로 잔인하게 보여준다.

남편없이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 '맬러리(산드라 블록)' 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며 영화는 흘러간다. 그녀가 무심코 받아든 무전 통신 하나로 강을 건너야 하는 현재의 맬러리와 아이를 낳기 전, 딸인지 아들인지 자신 뱃속의 아기에게 관심조차 없던 과거의 맬러리. 세상이 망하고 영원히 옆에 있어줄 것 같았던 여동생마저 사라져 버리자 악착같이 '생존' 만을 위한 싸움을 한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스스로 냉철하게 판단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함께 저택에 갇힌 사람들은 하나 둘 정신병자들에게 희생되어가고 결국 자신이 낳은 '걸' 과 '보이' 만 데리고 다른 생존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한다.

영화의 소재는 지극히 단순하다. 인간들이 영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무언가' 를 보게되면 자살을 하게되고 그저 '그것들' 을 두 눈으로 '보지만 않으면' 살 수 있다. 이런 영화에 끼어드는 건 인간들의 단순한 욕망과 이기심, 그리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배타심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배신 같은 이야기들이다. 소재가 단순한 만큼 어딘가에서 본 클리셰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지만 괴물들의 실제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으면서 공포감과 긴장감을 유발하는 감독의 연출력 하나는 정말 굉장했다.

버드박스의 '괴물' 들은 이렇게 누군가가 그린 그림으로만 보여진다.

 

'무언가' 를 직접 보고도 자살을 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소위 '정신병자' 로 분류되는 정신병원의 사람들이라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 이미 뱃속에 자신의 아기가 있으면서도 정작 아이에게는 관심도 없던 맬러리가 엔딩에 가서야 결국 아이들을 받아들인다는 캐릭터 구축도 좋았다. 버드박스에서 특히 볼만했던 장면은 극 초반부, 주인공들이 마트에 식료품을 조달하러 갈 때 차의 모든 창을 막아둔 뒤 차 안에 설치되어 있는 네비게이션에 의지하고 길을 나서는 장면인데 난생 처음보는 시퀀스라서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 연출에 정말이지 경이로울 정도였다.

분명 실체가 없는 것 같은 괴물들인데 자동차 전후방 센서에는 잡히는...

 

특별히 눈에 띄는 액션씬이나 과도한 대사들이 별로 없는 영화라 결말에 가서는 맥이 많이 빠질 수 있는게 영화 버드 박스가 지닌 최대의 단점이지만 상상력 하나로 이렇게까지 관객을 몰아붙이는 감독의 역량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도 이런 보석같은 작품들이 가끔 나오는구나 싶었다. 엔딩 씬에 등장하는 생존자들의 거주지는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뻔하면서도 참신했다. 새들이 괴물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무언가가 다가올 때면 경고를 하듯 울어댄다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

 


 

+
한때 제임스 완의 '컨저링' 시리즈가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 라고 했었는데 무서운 장면은 말도 못하게 많던데??!
(어디서 카피문구로 약을 팔어...)

이런 영화야 말로 진짜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지.

 


++
예전에는 주로 로맨틱 코미디가 잘 어울리는 여배우였는데 '그래비티(2013)' 하나로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하려는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 산드라 블록 누님.

'여전사', '강한 여자 캐릭터' 와는 또 다른, '생존하는 여성 캐릭터' 가 그녀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