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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영화 배심원들 리뷰

 

 

싫어요!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서 있는 겁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미로도 길이야.


홍승완 감독이 따뜻하게 건네는 국민참여 재판의 이야기(무려 각본, 감독까지 한 데뷔작).

2008년 국민이 참여하는 최초의 재판이 열리던 날, 여덟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존속살해사건의 피의자를 마주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영화 배심원들은 우리가 '재판' 을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든 것을 영화 초반부터 보여준다. 시종 딱딱하고 차가워보이는 재판장 '김준겸(문소리)', 역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우배석판사(태인호)' 와 '좌배석판사(이해운)'. 그리고 첫 국민참여재판을 이용해 이슈몰이 좀 해보려는 '법원장(권해효)' 까지. 그들이 밥벌어먹고 사는 재판장에 8명의 인간적인 배심원들이 끼어든다.

언제나 빚에 시달리는 청년 창업가 '권남우(박형식 / 8번 배심원)'를 시작으로 배심원들에게 법을 설명해주는 늦깎이 법대생 '윤그림(백수장 / 1번 배심원)',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양춘옥(김미경 / 2번 배심원)', 무명배우라서 배심 보다는 일당에 관심이 많은 '조진식(윤경호 / 3번 배심원)', 자녀 때문에 빨리 재판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주부 '변상미(서정연 / 4번 배심원)', 항상 팩트와 논리를 들이대는 대기업 비서실장인 '최영재(조한철 / 5번 배심원)', 30년 동안 시체 닦는 일을 했던 '장기백(김홍파 / 6번 배심원)', 배심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취업준비생 '오수정(조수향 / 7번 배심원)'. 나이도 성별도 살아온 인생도 모두 다른 여덟명의 배심원들이 그들의 눈으로 사건 자체를 다시 해석한다.

 

존속살해사건으로 피의자 위치에 놓인 '피고인(서현우)'은 어릴 때, '어머니(이용이)'가 일을 나가다 실수로 집 문을 잠궈버리는 바람에 불이 났던 집 안에 갇힌채 얼굴 한 쪽과 양 손에 화상을 입어, 평생 이렇다 할 직업없이 '딸(심달기 / 소라 역)'과 어머니, 이렇게 셋이 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어머니를 기초생활 수급자로 만들기 위해 동사무소에 여러번 방문해 보지만 늘 허사다. 결국 어머니와의 다툼 끝에 망치로 어머니의 머리를 때린 후, 아파트 베란다에서 친모를 밀어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사건 직후 피고인은 스스로 119에 신고전화를 했지만 계단을 급하게 내려오다 넘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 뇌출혈로 인한 기억상실을 겪고있다. 사건 당일 아파트 건너편에서 피고인을 직접 목격한 아파트 경비원의 진술과 살해도구로 쓰인 망치가 증거물로 채택되는 등, 굉장히 빠른 사건 수습 뒤, 재판으로 인한 양형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배심원들은 증인, 증거, 피고인의 자백 모두 확보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을 '무죄'로 이끄는 사람들이 바로 배심원들이었다는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18년 동안 형사부를 전담했던 김준겸 재판장의 강단있는 모습과 평소 법과 원칙에 충실한 면모들이 배심원들의 이의제기 때문에 한 꺼풀씩 벗겨진다. '결국 악한 인간은 없다. 환경이 그들을 괴물로 내 몰 뿐' 이라는 성선설을 기반으로 사건은 재판이 아니라 유죄냐 무죄냐를 따지는 지난한 심리게임으로 번져가는데 대한민국 첫 국민참여 재판이라는 메리트가 많이 적용되어 배심원들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는 선에서 그야말로 여덟명의 탐정들이(중간부터는 일곱명) 추리를 하듯 사건의 시간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결국 엔딩에 가서야 피고인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말 없이 아빠에게 달려가는 딸의 모습이 어찌그리 눈물겹던지. 영화 배심원들은 보통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건을 새로운 각도로 보게되고 여러명의 시각에 따라, 결론 역시 다르게 도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2008년 최초로 도입됐던 배심원제도가 판사판결-배심원 평결 일치율이 90%에 달하자, 2012년에는 강력 형사사건에 국한됐던 배심원제도를 전 형사재판으로 확대시켰다. 영화 배심원들은 실화이긴 하지만 최초로 배심원제도가 도입됐던 재판은 아니라고 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강도사건이었는데 빚으로 생활고를 겪던 강도가 월세방을 구하는 것 처럼 가장한 채 주인 할머니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치다 발각되자 할머니를 폭행한 사건이다. 강도가 직접 할머니를 병원에 옮긴 뒤 제 3자(마을 사람)를 통해 자수를 했고 피해자인 할머니 또한 선처를 호소하여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다고 한다. 이 사건도 국민참여재판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지만 홍승완 감독은 조금 더 보편적인 소재를 위해 지난 10년간 국민참여재판이 이루어진 판결들 500여건을 직접 찾아보며 소재를 찾았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존속살해사건은 2008년 말, 서울중앙지법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사건이다.

인간의 삶을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무 자르듯이 재단하는 선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런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홍승완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굉장히 흡입력이 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들 때문에 재판을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봐도 엄청 재미있고 푹 빠져들면서 볼 수 있는 영화다. 기본적으로 '법' 하면 떠오르는 모든 선입견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기분으로 플롯이 진행되기 때문에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도 많고 유치하다거나 손 발이 오그라드는 억지 신파씬들도 없어,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