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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당신은 좋은 사람 입니까? - 영화 증인 리뷰

 

 

개나 키워보까...

자폐인들은 저마다의 세계가 있어요. 거기서 나가기 힘들죠, 왜?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나가기 힘든 사람과 소통을 하고 싶으면 당신이 거기로 들어가면 되잖아요.

-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 마시고 즐겨. 이런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라고.

당신은 좋은사람 입니까?

나는 정신병자 입니까?

신혜는 웃는 얼굴로 나를 이용하고 엄마는 화난 얼굴로 나를 사랑합니다.


 

 

 

한 껏 힘을 빼니 이렇게 좋아보일수가 없구나.

영화 증인은 마치 실화같이 느껴지는 좋은 영화다(실화가 아니라 공모전에서 당선된 시나리오라고 한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의 변호사, '순호(정우성)'. 아버지가 벌여놓은 보증 때문에 끝도없이 빚을 갚고 있지만 어느날 그에게도 줄을 잘 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바로 자신이 변호를 맡은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독거노인의 가정부로 10년동안 일하던 '미란(염혜란)'이다. 그녀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본 유일한 목격자이자 자폐아 소녀인 '지우(김향기)'가 나타나면서 순호는 지우를 제대로 된 증인으로 세울 수 없다는 것 또한 입증해야 한다는 이야기.

본작은 꽤나 영리한 플롯으로 관객을 속인다. 결말에 가기 전까지 당연히 반전은 보여주지 않은채 '자폐 청소년이 살인사건의 증인이 될 수 있을까' 라는 논제로 소재 자체를 희석시킨다. 그 안에서 아버지의 뒤를 봐주느라 노총각 신세를 면치못하는 순호의 사정이 개입되며 영화는 그럴듯하게 흘러간다. 영화 증인은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처음엔 사건의 본질을 모른채,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압승을 거두리라 다짐하지만 진실을 알고난 뒤에도 당신같으면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느냐 묻는다. 아버지 덕분에 항상 돈이 궁한 변호사인 순호는 자신이 소속된 변호사 팀의 우두머리인 '병우(정원중)'에게 온갖 물질적인 혜택을 받으며 이제 좀 '변호사 답게' 살아가게 되지만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었던게 거짓임을 알게된 뒤 새로이 각성하여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가슴속에 커다란 울림을 선사한다. 세상에 팽배한 장애인 편견을 과감히 깨부수며 많은 이들의 공감역시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 영리한 영화다.

부와 명예를 한 번에 거머쥘 수 있는 탄탄대로 같은 상황에서 신념을 가지고 판결을 뒤집을만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가끔 우리는 악귀같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거액의 수임료를 챙기며 누가봐도 유죄인 사람을 뻔뻔하게 변호하는 변호사들을 왕왕 본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된다는 논리는 맞는 말이지만 자신의 양심까지 속여가며 피의자를 감싸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모종의 경각심까지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유치한 부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에게 거짓말을 하며 막판에야 판결을 뒤집듯 진실에 다가가지만 썩 나쁘지 않은, 순호와 지우 덕분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다.

영화 증인에서 정우성은 아주 오랜만에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을 빼고 느슨하고 여유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8)' 로 스타덤에 올랐던 그가 이정도로 편안한 인상을 심어준 영화는 아마 없었던 것 처럼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연기를 한다. 게다가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지닌, 고질적이었던 '발음문제' 도 본작에서는 후시 녹음이 거의 없는 것 같은 느낌이라 여태껏 봐온 정우성의 쎈 연기는 싹 다 잊혀지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이런 편하고 일반적인 연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영화에 함께 등장한 김향기나 지우의 엄마 '현정' 역을 맡은 장영남 배우는 마치 실제 자폐아를 둔 가정에서 있을법한 밀착형 연기를 보여주어 역시 대체할 수 없는 명 배우들임을 영화 증인에서도 보여준다.

거기에 사건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는 피의자 역의 염혜란 배우 역시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무서웠고.

진짜 이 장면에서 소름이 아주 그냥...

 

한 가지 재미있던 건, 본작에서 정우성은 영화, '더 킹(2016)' 의 '조인성(박태수)' 역할의 입장에 서있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 순진하기만 한 순호가 매 번 '때가 타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더 킹에서 그가 맡았던 한강식이 떠올라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