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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1 movie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리뷰

넌 친절이 과해서 늘 매를 버는구나.

- 날 겁탈하러 온거예요 구애하러 온거예요?

- 난 신사야

- 겁탈이군요.

걔가 혀로 해주는 게 너무 좋거든.


 

 

 

 

앤 여왕을 중심으로 두 여자가 암투를 펼치는 실화.

절대권력을 가진 히스테릭한 영국의 여왕 '앤 스튜어트(올리비아 콜맨)'. 그녀의 뒤엔 왕국의 실권을 쥐고있는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 라는 공작부인이 존재한다. 형부에 이어 왕좌에 앉았지만 불우한 가정사와 통풍에 의한 히스테릭, 아이보다 더 아이같은 정신세계를 지닌 앤 여왕을 쥐락펴락하는 사라에게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일거리 좀 달라는 명분으로 몰락한 먼 친척 뻘의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 이 찾아온다는 이야기.

놀랍게도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실화다. 레즈비언으로 등장하는 앤 여왕의 성적 취향만 야사로 전해져온 소재일 뿐. 그녀가 낳은 열 아홉명의 자녀와 그녀의 비위를 살살 맞춰가며 조종하는 사라, 정치 따위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의 신분상승만 원했던 애비게일의 이야기 등이 거짓말 같지만 모두 진짜다.

솔직히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엠마 스톤이 등장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보고싶었던 영화다. 약간 코믹한 마스크 덕분에 아직 몸개그가 잘 어울리는 그녀는 예고편에서도 사라가 쏜, 장전이 되지 않은 총에 맞는다던지 마차에서 내리다 변태스러운 외간남자의 손장난에 그만 진흙탕에 넘어진다던지 하는게 꽤나 흥미를 유발했다.

실상 영화를 보고나니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비극적인 이야기였고 두 여자의 여왕을 위한 질투와 싸움이 무척이나 재미있던 영화다.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실화.

 

앤 여왕의 초상

1702년, 왕으로 즉위한 앤 스튜어트. 영화에서는 괴랄한 성적 취향에 유아와 같은 성격, 토끼들을 침실에서 키우는 겉잡을 수 없는 캐릭터로 묘사됐는데 실제로는 온순한 성격이었고 어릴 때 부터 잔병치례를 많이 한 인물이라고 한다. 명예혁명으로 의회민주주의의 기반이 마련된 뒤, 자본가와 지주, 보수적인 가톨릭 교도를 대표하는 토리당과 귀족을 지도자로 하면서도 상인이나 소시민을 대표하고 자유주의적인 신교도를 위해 힘쓰던 휘그당 사이에서 자신의 심복인 사라의 말을 100% 수용하여 정치를 하던 인물이었다. 덴마크 왕자와 결혼했던 그녀는 실제로 19명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14명을 유산으로 잃고, 두 명은 태어난 날 죽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세 명의 아이들도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사망하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왕실 내의 수 많은 토끼들이 그녀의 자식들로 비유된 것도 이 때문이다. 우울증과 다리에 온 통풍으로 인해 밤마다 절규하며 잠이드는 그녀의 인생은 굉장히 서글프고 씁쓸하다.

앤 여왕을 연기한 올리비아 콜맨. 영화의 감독인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중 하나였던 '더 랍스터(2015)' 에도 등장한 적이 있는 그녀는 그런 앤 여왕을 절절히 표현했다. 사라 앞에서는 한없이 아이같다가도 자신을 잘 애무해 주는 애비게일에게는 확실히 마음을 열어주지는 않는 모습들이 마치 사춘기 소녀 같았달까. 자신의 결정 하나에 많은 국민들이 고통받을 수 있다는 지점들을 인지는 하고 있어도 그것들을 사라에 대한 질투심 유발이나 투정 따위의 매개체로 사용해 버리는 얄팍한 국정운영 씬들이 굉장히 볼만했다. 그녀의 뒤에서 야심을 보이다가도 앤 여왕을 어르고 달래며 부모처럼 행동하는 사라 역시 좋았고. 올리비아 콜맨은 이 영화로 2019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룬다. 받을만 했다, 정말.

사라의 초상

 

앤 여왕의 심복이자 영국의 실질적인 실세였던 사라 제닝스. 본명은 사라 처칠이라고 한다. 앤이 8살, 사라가 13살 부터 쭉 함께 자라왔다. 덕분에 누구보다 앤 여왕을 잘 알고 있으며 그녀의 시종이 아닌, 조언자나 동반자로서 평생을 같이한 인물이다. 말버러 장군과 결혼한 뒤 본격적으로 영국 정치를 조종한 여자로, 좌중을 압도하는 굉장한 카리스마와 결정능력을 지닌 공작부인이다. 그걸 레이첼 와이즈가 연기했다.

그녀의 마스크가 지닌 특유의 카리스마나 남성미 마저 느껴지는 앤 여왕에 대한 언행, 행동들은 아마 레이첼 와이즈가 아니라면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연기라고 생각된다. 왕실에서 입는 정복이 아닌 바지나 승마복 등을 입은 사라의 모습들은 앤 여왕이 왜 그녀에게 반했는지 알만한 장면들이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왕권을 쥐고 정치놀음을 하는 인물이었지만 실제로는 뚜렷한 목표를 정해두고 움직였기에 앤 여왕이 믿고 맡기는(?) 정치 실세였다. 영화 속에서는 나름 대의를 볼 줄 아는 사람으로 묘사됐고 결국 애비게일이 나타난 뒤엔 외국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 앤 여왕이 사망한 뒤에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비교적 부유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참고로 사라 처칠은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9대조 할머니 라고 한다. 사라의 딸인 앤 처칠은 다이애나 왕세자비 가문인 스펜서 가문과 결혼을 했고.

애비게일의 초상

 

사라의 인생을 바꿔놓는 인물인 애비게일 힐은 몰락한 귀족 출신의 하녀다. 애비게일의 가문은 아버지의 도박 덕분에 파산했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다시금 신분상승을 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친척인 사라를 찾아오는 애비게일 힐. 오직 귀족으로 다시 올라서기 위해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무엘 마샴과 결혼을 하기도 했다. 몰락한 가문 출신의 하녀가 앤 여왕의 특례로 귀족과 결혼하여 마샴 부인이 됐고 여왕이 애비게일에게 2천 파운드의 지참금을 챙겨주기도 했다.

애비게일 힐을 연기한 엠마 스톤은 캐릭터가 지닌 특성상 시간이 갈수록 꽤나 다층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하녀에서 여왕의 시중을 드는 몸종으로, 앤 여왕을 유혹하는데 성공한 뒤에는 귀족과 결혼하며 마샴 부인이 되고 결국 사라를 내쫓고선 그녀가 하던 일을 하긴 하는데 영 재미가 없다. 오직 애비게일의 목표는 신분상승이었기 때문에 그 목표를 이룬 뒤엔 그저 부유한 귀족의 층에서 유유자적 즐길 뿐이다. 여기에서 캐릭터의 힘이 맥없이 풀려버리는데 그것 또한 애비게일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본작이 마치 그녀의 삶을 그려낸 영화인 것 처럼.

캐릭터를 씹어먹으며 영화 전체를 뒤흔드는 세 여배우의 연기 덕분에 실질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스토리의 본질이 얼핏 가려지는 독특한 영화다. 영화 전체를 덮고있는 그 시절 영국을 표현한 유려한 미술이나 왕궁 속을 표현한 어지롭도록 아름다운 배경들, 그리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플롯에서 사용하는 배경음, 귀족들의 놀음 씬에 의도적으로 슬로우 모션을 쓰는 블랙 코미디적 연출은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감독의 전작들인 '킬링 디어(2017)', '더 랍스터' 에서 봐왔던 기시감에 '음악과 슬로우 모션 하나로 확실히 어딘가 공포스럽거나 의뭉스럽고 섬뜩한 표현을 잘 하는 감독' 이라는 감상을 받게 한다.

성격이 각기 다른 캐릭터들과 훌륭한 연출, 그리고 영국 왕실의 미술들이 한데 어우러진, 아주 재미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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